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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실세’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 별세

‘5공 실세’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 별세

장은석 기자
입력 2016-03-05 16:15
업데이트 2016-03-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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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수 허화평과 함께 ‘쓰리 허’…언론통폐합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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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 빈소 조문. 연합뉴스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 빈소 조문. 연합뉴스 5일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2016.3.5 연합뉴스

‘5공 실세’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이 5일 오전 7시30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허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 시절 허삼수, 허화평과 함께 ‘쓰리(3)허’로 불렸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농과대, 일본 도쿄대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조선일보 기자로 도쿄특파원 등을 지내다 1979년 주일대사관 공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80년 이른바 신군부로부터 발탁돼 중앙정보부 비서실장, 국보위 문화공보위원, 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 13대 국토통일원 장관 등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의 실세였던 허 전 장관은 언론 통폐합을 주도하고,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던 1981년 5월에는 5·18민주화운동 1주년을 무마시키기 위해 관제집회에 수천 명을 동원한 이른바 ‘국풍 81’을 일으키기도 했다.

언론 통폐합 당시 전두환 정권은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을 이유로 중앙지 7개를 6개로, 지방지 14개를 10개로 각각 줄이고 통신사와 방송사의 통폐합도 단행했다.

이같은 언론 통폐합으로 많은 언론인이 해직돼 사회 문제화되기도 했다.

허 전 장관은 1989년 5공 비리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갔지만, 여전히 언론 통폐합은 잘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사이비 기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진정한 언론 창달이 되지 않고, 사회적 강자인 재벌과 언론은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 두 가지 기준으로 살펴볼 때 언론개혁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국회는 허 전 장관을 위증죄로 고발했으나 검찰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1999년에는 불교 텔레비전 사장으로 선임됐지만 노조와 언론단체, 불교계의 반발에 직면했고 6개월여 만에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의 공천을 받았지만 공천장을 스스로 반납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수경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031-787-1501), 발인은 8일 오전 6시. 장지는 경남 고성군 선산.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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