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영국에서 구국외교를 펼친 이한응(1874~1905)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874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이한응 선생은 20세에 과거에 합격, 한성부 주사와 영어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01년 주영 공사관 3등 참사관으로 부임했다.
국제정치의 중심 무대 중 하나였던 런던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외교관계를 관찰하던 그는 조국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세력의 지배 아래 놓일 것을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는 등 위기에 놓인 조국을 구하기 위해 4년간 런던에서 맹렬하게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영국마저 일본과 동맹을 맺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독·보호권을 인정하자 이에 항의하며 그해 5월 12일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구국외교를 펼치다 순국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연합뉴스
1874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이한응 선생은 20세에 과거에 합격, 한성부 주사와 영어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01년 주영 공사관 3등 참사관으로 부임했다.
국제정치의 중심 무대 중 하나였던 런던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외교관계를 관찰하던 그는 조국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세력의 지배 아래 놓일 것을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는 등 위기에 놓인 조국을 구하기 위해 4년간 런던에서 맹렬하게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영국마저 일본과 동맹을 맺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독·보호권을 인정하자 이에 항의하며 그해 5월 12일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구국외교를 펼치다 순국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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