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국면 선봉 서며 ‘秋 패싱’ 반전…“이제 진짜 與대표 된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일자리 추경’에 이은 증세 국면에서 여권 내 논의를 주도하며 빠른 속도로 존재감을 회복했다.추 대표는 이른바 ‘머리 자르기’ 발언의 여파를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가 급히 꺼내든 ‘대리사과’ 카드로 ‘추미애 패싱’이라는 조어를 낳을 정도로 체면을 구기는 듯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이 담긴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 어젠다를 주도하며 반전에 성공, 집권여당 대표로서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한 모양새다.
추 대표는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 소득세 과세구간을 하나 더 신설하자는 ‘증세 주장’을 내놨다.
그는 “소득 200억원 초과에서 2천억원 미만까지는 현행 법인세율 22%를 유지하되 소득 2천억원 초과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과세표준을 신설해 25%를 적용하자”고 제안하며 “소득재분배를 위해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으로 현행 40%인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초고소득 증세 문제를 전면화하는 데 불을 댕겼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이어진 국가재정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원래 재원 대책 중에는 증세가 포함돼 있었지만, 증세의 방향과 범위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확정해야 할 시기인데 어제 토론으로 방향은 잡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추 대표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대리사과’ 파동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추 대표로선 새 정부의 핵심과제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입지 회복과 당청 불화설 진화의 계기를 잡은 셈이다. 실제 추 대표의 이날 발언은 당정청 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추 대표는 앞서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 회동에서 “여당 대표가 막무가내로 대리사과를 당하기 전에 대통령도 여당 대표와 소통해달라”고 ‘뼈있는 요청’을 하면서도 추경이 그 시점까지 통과되지 않은 데 대해 “대통령을 뵙기가 송구하다”며 몸을 낮췄다. 또한 ‘대리사과’의 당사자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팔짱을 끼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추 대표는 24일에는 추경 정족수 논란으로 귀결된 소속 의원 무더기 본회의 불참 사태와 관련, “이번 일을 계기로 집권 이후의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본의 아니게 당원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과했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서는 원내를 책임지는 원내대표 대신 추 대표가 직접 ‘대리사과’ 함으로써 집권여당 대표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추 대표는 이와 함께 초고소득 증세와 관련, “조세 정의의 시금석이 될 것”,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명예과세’”라며 쟁점화를 이어갔다.
내달 27일로 2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추 대표는 앞으로 청와대 및 정부와 호흡을 맞춰 문재인 정부의 개혁과제를 힘있게 추진하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 초반부 평가를 좌우할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당내에서는 당청간 갈등의 불씨가 언제든 살아날 수 있는 만큼, 추 대표의 리더십은 앞으로도 계속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추 대표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별로 관심이 없다. 당 대표가 사심이 있으면 안 된다”, “제가 레드카펫을 밟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서울시장 출마설에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추 대표가 때때로 정제되지 않은 ‘센 발언’으로 여전히 야당 대표 같다는 말이 당 일각에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증세 정국에서 집권여당 대표로서 자리매김한 것 같다”며 “이후 리더십 발휘 정도에 따라 여권내 입지가 좌우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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