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주체라 그랬죠? 여기 어디 장관이 들어가 있습니까. 여기 장관이 어디 있어요! 여기 사령관이 어디 있고!”고(故)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국방부의 해명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수사 개입은 없었다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 관련 질의에 우왕좌왕하다 역설적으로 혐의적용 관련 지시가 있었음을 자인한 셈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2023.9.6 국회 대정부질문)
여기에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구속 영장에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박주민(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저녁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고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2023.9.7 국회방송
박 의원은 특히 개정된 군사법원법 취지와 그 세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를 파고 들었다. 그는 군 사망사건 수사에 관여할 수 없는 국방부 장관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법률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해당 법안 취지는) 군에서의 개입을 배제하겠다, 특히 지휘부의 간섭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군 수사기관이 범죄사실을 알면 ‘바로 딱 신속하게’ (민간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관도, 부대장도 아닌 수사기관이 알면 바로 딱 신속하게 이첩해야 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지적했다.
박 의원은 “내가 이 법을 대표발의·심사했다. 여기(법 조항에) 장관이 어딨고 사령관이 어디 있느냐”며 “범죄 사실을 알고 바로 딱 신속하게 이첩하는 주체는 군 수사기관”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2021년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사건 당시 군사경찰의 수사 은폐 및 축소 논란이 일면서 개정된 군사법원법에서는 범죄 혐의점이 있는 군내 사망사건의 경우 군 관련 수사기관이 아닌 민간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하도록 하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저녁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고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하며 화면을 통해 개정된 군사법원법 관련 설명하고 있다. 2023.9.7 국회방송
박 의원은 그러면서 “왜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결과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장관은 “(채 상병 순직 당시) 지휘관계에 있는 8명 전부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그게 (수사 내용에) 관여한 게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박 의원은 “8명 문제 있다고 수사관이 알아서 하려 했더니 ‘멈춰, 8명 다 하는 건 문제 있어’ 이게 내용에 관여한 게 아닌가. 결과적으로 내용(해병대 수사단이 제출한 보고서와 최종 경찰로 이첩된 보고서)도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 장관은 “제가 내용을 알아보고 누굴 (혐의에서) 넣어라 빼라 지침 준 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해명에 대해 박 의원은 “방금 얘기했지 않았나. 안 되는 걸(수사개입) 한 것”이라며 “장관 스스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이 장관을 몰아세웠다.
박 의원의 호통에 말문이 막힌 이 장관은 잠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에는 “혐의자 특정 말라” 국방장관 지시 명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9.6 홍윤기 기자
앞서 지난달 30일 국방부 검찰단이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한 사전 구속영장청구서를 보면,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결과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이 취소된 직후 ‘해병대부사령관은 오후 2시 10분경 국방부에 들어가 우즈베키스탄 출장 직전이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이첩보류‘ 등 지시를 받고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했다’고 기술돼 있다.
정종범 해병대부사령관은 같은 날 오후 4시쯤 해병대사령부 회의실에서 해병대사령관, 해병대사령부참모장, 공보정훈실장, 비서실장, 정책실장, 박 전 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영장청구서 7쪽에는 ‘부사령관이 장관님 지시사항은 ①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 ②수사 결과는 경찰에서 최종 언론 설명 등을 하여야 한다 ③장관이 8월 9일 현안 보고 이후 조사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④유가족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회의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라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진술이 기술됐다.
이는 국방부 장관의 문서로 된 명시적 이첩보류 지시가 없었다는 박 전 단장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술된 것이지만, 이 장관이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적 없다고 한 그간의 국방부 입장과는 배치된다.
이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예결위 전체 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혐의자를 포함시키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5일 항명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용산구 국방부 군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9.5 홍윤기 기자
영장청구서 23쪽에는 ‘피의자로부터 법무관리관과의 8월 1일 대화를 함께 청취한 (공란)과 (공란)은 법무관리관이 특정 혐의자를 제외하라는 것이 아니라, 혐의사실과 혐의 내용을 빼고 조사기록만 넘기라고 이야기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바’라고 적혀 있다.
공란으로 표시된 이들 2명은 군검찰 조사에서 박 전 단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통화를 함께 들었으며, 당시 법무관리관이 박 전 단장에게 혐의사실과 혐의 내용을 빼고 조사기록만 넘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지만, 특정 혐의자를 제외하라는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군검찰은 이를 토대로 영장청구서에 “법무관리관이 피의자에게 ‘특정 혐의자를 제외하라’고 말했다는 내용은 다른 사람의 진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또 “‘혐의사실, 혐의 내용을 다 빼라’고 말했다는 점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은 김정민 변호사는 6일 군검찰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군검사는 ‘혐의사실, 혐의 내용을 다 빼라’고 하는 지시가 적법한 수사지휘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서 피의자를 입건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는 매우 심각한 법리 오해”라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보아 수사를 개시하는 것을 범죄의 인지라고 부른다’고 판시한 바 있다”며 “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는 결국 범죄를 입건하지 말라는 뜻이고 이는 명백하고도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수사방해, 수사개입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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