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司試 준비…경찰대 논란

세금으로 司試 준비…경찰대 논란

입력 2010-02-18 00:00
업데이트 2010-02-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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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25% 사시공부”…합격자 80~90% 경찰 떠나

경찰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대학교의 학생들이 사법시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어 논란이다.

법률 전문가는 경찰 선진화에 도움이 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한 대부분의 경찰대 출신들은 경찰의 길을 포기하고 법조인으로 나선다는 게 문제다.

경찰대는 등록금이 무료이고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물론 책 값과 품위 유지비까지 제공한다. 법치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에 봉사하는 민주경찰 육성에 쓰여야 할 국민의 세금이 경찰대생의 사시 뒷바라지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임용뒤에도 사시에 ‘올인’..합격자 급증

1981년 설립된 경찰대 출신으로 작년까지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모두 87명.

1990년대까지 한 해 2명 안팎이었던 합격자는 2000년대 들어 5∼6명으로 늘더니 2008년에는 14명으로 급증했다.

작년도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997명 중 경찰대 출신은 19명. 대학별 순위로 따지면 10위로, 경찰대 한해 입학생이 120명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작년에 첫 신입생을 받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도 매년 10여 명이 합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대 학생 중 상당수가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있기에 가능한 수치다.

경찰대 졸업 뒤 기동대 소대장(경위)으로 근무하는 A씨는 “학교에서 법을 공부하다 매력을 느끼면 더 공부해보자는 욕심에 사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2학년 이상만 따지면 4분의 1 정도는 사시 준비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대생들이 사법시험 준비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커리큘럼에 법학 수업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 행정법, 형법, 민법, 형사소송법, 회사법 등이 전공과목이어서 학교 공부와 사시 준비를 병행할 수 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임용되고 나서도 사시 공부는 계속된다.

경찰대 출신의 B씨는 “성적이 좋아 국비로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도 상당수가 사시를 준비한다.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전.의경 소대장 근무를 마친 뒤 일선 경찰서에 배치되면 대학원 진학 등을 이유로 휴직하고 사시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대 내에는 일부 교수를 중심으로 사법시험을 권장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사법권 독립문제와 맞물려 역량 있는 경찰간부를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사시 준비를 독려한다는 시각도 있다.

◇ 최근 2년 경찰대 출신 사법연수생 모두 경찰 떠나

경찰대생들의 사법시험 도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법률 전문가는 경찰 업무와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장문철 경찰대 교수는 “경찰 조직이야말로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많아야 한다”면서 “경찰 간부가 되려면 법리도 잘 알아야 하니 사시 공부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경찰대 출신이 사시에 합격한 뒤에도 경찰에 계속 남아있을 때에는 맞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시에 합격한 경찰대 출신 10명 중 8∼9명이 경찰 조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사법연수원 수료자(39기) 중 경찰대 출신은 7명. 이들은 수료 뒤 판사(3명)와 변호사(4명)의 길을 걸을 예정이다. 작년(38기)에도 4명이 판사 1명, 변호사 3명 등으로 진로가 결정됐다.

최근 2년간 경찰대 출신 사법연수원 수료자 11명 중 경찰로 돌아간 경우는 한 명도 없다.

2007년(36기)과 2008년(37기)에는 각각 4명과 5명의 경찰대 출신 수료자가 있었지만 1명씩만 경찰로 복귀했다.

전체적으로 봐도 경찰대 출신 사시 합격자 87명 중 현재 사법연수원에 있는 13명과 연수원 입학을 앞둔 19명을 제외한 55명 가운데 여전히 경찰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1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머지 45명은 판사 16명, 검사 6명, 변호사 23명 등으로 진로를 바꿨다.

경찰대 졸업 직후 사시에 합격해 법무법인(로펌)에 근무하는 C 변호사는 “경찰대 동기가 120명인데 고위 간부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승진인사 때 오히려 경찰대 출신에 대한 역차별도 있어 경찰에 미련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 “직업선택의 자유” vs “설립취지 무색”

경찰대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

등록금이 없고 기숙사도 공짜여서 돈이 들지 않는다. 책값과 제복비와 더불어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한 달에 30만 원 정도의 용돈까지 받는다. 경찰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혜택이다.

이 때문에 경찰대생은 임용 뒤 6년(전.의경 소대장 근무 기간 포함)간 의무적으로 경찰에 복무해야 하며, 이를 채우지 못하면 의무 복무를 하지 못한 기간 만큼의 학비를 상환해야 한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그만두면 상환해야 할 금액이 2천700만 원 정도다. 대학 4년간의 급식비와 제복비, 책값, 품위유지비 등이 포함돼 있다. 등록금과 기숙사비는 정확한 비용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환액에 포함되지 않는다.

적쟎은 돈이지만 사시 합격 이후 판.검사나 변호사로 전직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비교해보면 큰 돈이 아니다.

C 변호사도 “사시에 합격한 뒤 상환 비용 때문에 경찰에 남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세금으로 공부한 경찰대생들이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하고 의무복무 기간 6년을 채우지 않은 채 법조인으로 전환하고 있는 데 대해 경찰대 내부에서도 고민이 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경찰대 설립취지와 학생들의 행복 추구권 간에 충돌이 일어난다”며 “개인적으로는 ‘세금으로 더 좋은 경찰이 되는 공부를 해야지, 일신의 영광을 위한 공부를 하면 되겠느냐’며 사시 공부를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경찰조직이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더라도 우대하지 않다 보니 학생들이 경찰을 떠나는 측면도 있다”며 “수사면 수사, 범죄예방이면 범죄예방 등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확실하게 보상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석 경찰대 홍보실장은 “개인의 헌법적 자유도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다른 분야에 가더라도 경찰대에서 익힌 철저한 국가관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일할 것이니 교육의 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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