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전범석 교수 “현식 받아들이고, 병마 극복 신념 가졌다”
갑작스럽게 사지가 마비돼 병상에 누워야 했던 신경과 의사가 장애를 딛고 국내 최고 권위의 서울대병원 주임교수에 올라 화제다.주인공은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범석(52) 교수.그는 지난 16일자 인사에서 서울대의대 신경과학교실 주임교수가 됐다.또한,서울대병원에서는 신경과 진료과장도 맡았다.
의대에서 주임교수란 자리는 ‘의사의 꽃’으로 불린다.해당 진료분야에서 최고의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물론 신경과학교실 소속 의사들에 대한 인사권과 운영권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의대 신경과학교실은 본원인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등 3개 병원을 합쳐 의사(교수 23명,전공의 42명)만 65명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커 주임교수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사지마비의 장애를 극복한 전 교수가 맡게 된 것이다.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인간승리’라고 하지만 전 교수는 지난 시간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회고한다.
전 교수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지난 2004년 6월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전 교수는 이날도 평소 주말처럼 점심을 한 뒤 고등학교 후배와 함께 남한산성을 올랐다.그런데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졸도로 쓰러졌고,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마비상태에 빠졌다.
국내 최고의 신경과 전문의가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신경마비 증세로 꼼짝없이 병상에 누운 처지가 된 것이다.태아의 뇌세포를 파킨슨 환자의 뇌에 이식하는 수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고,2000년 이후에만 10여개 이상의 기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던 그였다.
하지만,이때부터 그의 삶에 대한 의지는 더욱 빛났다.사고 직후 의식이 돌아온 순간부터 그는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냉철하게 진단하고,남다른 정신력과 의학적 지식으로 주치의와 협력해 스스로 진단하고 처치해 나가기 시작한다.
전 교수는 우선 목 부위의 척수가 더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고현장에서 주변 사람들한테 목을 보호해주도록 요청한 뒤 들것 대신 헬기를 불러 후송하도록 했다.
이어 병원에 와서는 터진 디스크를 제거하고 위·아래 척추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후 3일만에 물리치료과 재활운동을 시작했다.이 모두가 전 교수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하지만,당시 상황은 최악이었다.수술은 잘됐지만 나아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전 교수는 당시를 “오른쪽 발가락만 까닥할 수 있었을 뿐 사지 마비는 계속됐다”고 돌이켰다.
그런 그가 재활치료에 전념토록 한 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살아있는 자체를 ‘기적’으로 믿는 긍정의 힘이었다.
전 교수는 “척수손상은 호흡 마비를 유발할 수 있었는데 호흡이 마비되지 않았던 것도 기적이요,사고를 당한 내가 척수손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또한 기적”이라며 “넘어질 때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뇌 손상을 받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긍정의 힘으로 그는 사고 9개월 뒤 정말 기적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이후 50여편의 SCI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연구활동도 왕성해졌고,환자 진료도 사고 전처럼 1주일에 네 번씩 했다.
그는 지금도 그는 병원 연구실에 있을 때면 실내 자전거를 이용해 운동을 하고,저녁에는 재활의학과에 가 물리치료를 받는다.출퇴근도 지하철을 이용한다.
전 교수는 “많은 사람이 사고를 당하면 실망과 좌절,우울감에 빠지지만,이런 생각으로는 절대 병마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병마를 어떻게 이겨낼지 하루빨리 생각을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는 주임교수로서 “임기 동안 전공의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원 서울대병원장은 “파킨슨병을 비롯한 이상운동질환 전문가로서 탁월한 역량과,개인적인 역경을 훌륭히 극복해낸 점 등을 고려했다”면서 “앞으로 주임교수와 신경과 과장이라는 중책을 훌륭히 수행해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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