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연세대 호킹 신형진씨 ‘원더 맘’ 이원옥씨의 30년 분투기

[주말 인터뷰] 연세대 호킹 신형진씨 ‘원더 맘’ 이원옥씨의 30년 분투기

입력 2011-03-05 00:00
업데이트 2011-03-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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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2시 서울 개포동 자택에서 만난 ‘연세대 호킹’ 신형진(28)씨의 어머니 이원옥(65)씨는 늦은 점심을 들고 있었다. 따뜻한 분위기, 거실과 베란다는 축하 꽃으로 장식돼 있다. 이씨와의 인터뷰 예정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오후 5시가 돼서야 말문을 닫았다. 이씨는 꼬박 3시간 동안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좌절과 희망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달변이다. 그렇지만 차분한 어조. 고비라고 느꼈던 대목에서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180분이 빠르게 지났다. 이씨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할 이야기를 다했다.”고도 했다. 인터뷰 내내 침대에 누워 컴퓨터를 하고 있는 형진씨를 이씨가 바라본다. 위대한 모성, 사회가 답할 때다.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음질이 좋지 않고 초반 사진기자의 플래시 소리가 청취 분위기를 흐릴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3시간 분량의 인터뷰를 51분여로 줄여 5개의 음성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파일 1. 처음 병을 알았을 때, 초등학교 생활



→(아들 병을) 언제 아셨나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잠깐 생각에 잠기다) 형진이가 7개월 됐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원인을 몰라 미국 큰 병원에 갔어요. 머슬 디지즈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가 했어요. 저는 뇌성마비밖에 모르는 세대거든요. 중추에서 근육을 움직이도록 전달하는데 이 전달이 중간에 막혀 근육을 움직이지 못해 점점 약해지는 병이라고 하더라고요.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거에요. 그런데 폐 근육이 점점 약해져서 폐렴이 생기면 아주 심각해요. 쉴 때와 잘 때는 산소마스크를 쓰는데 평소에 자가 호흡하느라 힘든 상황에서 에너지를 세이브해 놓는 거죠.

→무척 놀랐겠네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형진이가 10살 때 장기입원했던 적이 있어요. 호흡이 끊어졌었어요. (손을 코에다 대며) 아무 호흡이 없는 거예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했어요. 그때 매봉터널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만약 터널 없었으면 은마아파트로 돌아가야 했죠. 운이 또 좋았던 게 응급실에 환자가 없어서 형진이가 오니까 의사들이 다 달라붙어서 형진이를 살리려고 애썼죠. 8, 9분 동안 호흡이 멈췄는데 기관지에 삽관하려고 형진이 앞니 2개를 부러뜨릴 정도였어요.

→학교생활은 제대로 했나요.

-(울컥한 이씨는 말을 잠시 멈췄다. 북받치는 표정으로) 초등학교 3년밖에 안 다녔어요. 다행스럽게도 교장선생님이 아프면 한 달에 한 번 와도 좋으니 유급하지 말고 친구들 따라 학교 다니라고 하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장애가 있는 아이니 따돌림 당하지 않을까 너무 걱정했어요. 혹시 형진이가 쓰러지면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 문틈 열고 살피는데 친구들과 잘 지내니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형진이가 14살 때 처음으로 좌절을 느꼈어요. 배정받은 중학교 교장선생님한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과 저와 형진이가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교장선생님이 난감한 얼굴을 하며 이렇게 장애학생 한 명 오면 자기들이 불편하다며 장애학교 왜 안 가냐고 하셨죠. 오지 말라는 학교에 갈 때 저와 형진이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갈 데가 없는데. 그래도 그 선생님이 은퇴하면서 나중에 저한테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셨어요. 감동이었어요.

파일 2. 초등학교 생활, 특수학교나 가라던 교장 선생님



→공부를 잘한 것 같은데.

-중학교 입학할 때가 됐을 때 걱정이 됐어요. 수학이다 영어다 초등학교와 차원이 다른데 형진이 때문에 반평균 떨어지면 어쩌나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6학년 말에 모의고사 봤는데 성적이 괜찮았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담임 선생님이 형진이 성적 발표하는데 총 몇 개 틀렸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와’ 하더라구요. 형진이는 몸이 아프니까 학교도 많이 못 가고 한 번도 학습지 해 본 적 없고 학원도 다닌 적 없었는데 그런 모습 보고 ‘아 다행이다’하며 용기가 좀 났어요.

→항상 조마조마하지는 않았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실에서 숨이 끊어져 또 고비였어요. 형진이 컨디션 안 좋으면 미리 확인하고 학교에 안 가는데 그날은 참 좋았어요. 그런데 1교시 끝나고 아이 얼굴이 쥐색이 되고…. 숨 막힌데 뚫어줘야 하는데 10분이 돼도 뚫리지 않으니까 여선생님들 붙어서 손발 따는데 피 범벅되어도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하죠. 10분 두들겨도 얼굴색 미동도 없는데. 괜히 두들기고 있나 그 생각까지 들어 찰나적으로 그만 두드릴까 생각했는데 두드리는 것 외에 할 게 없었어요. 어떡하면 좋을까 혹시나 해서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그때 생각하면 소름끼쳐요. 그런데 갑자기 눈썹 한두 개가 움직이더니 얼굴색이 돌아오면서 희망이 다시 왔어요. 형진이가 슬며시 눈 뜨더니 “머리 아파.” 이 말 한마디 했어요.

→컴퓨터를 좋아한 게 학과를 선택한 이유인가요.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어요. 형진이가 사 달라는 책이 거의 다 컴퓨터 관련 책이었고, 월간 구독도 했어요. 컴퓨터라는 세계를 통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컴퓨터) 공부는 어려웠지만 집에서 근무할 수 있고 자기가 개발할 수 있고…. 형진이 꿈이 소프트웨어 개발이잖아요. 창의성만 있으면 빌 게이츠나 저커버그처럼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거죠. 못 움직이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세계에 갈 수 있으니까 확고하게 컴퓨터 과학과를 원했어요.

파일 3. 중고교 생활,숱한 고비,대학 진학



→대학생활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한숨을 푹 쉬면서) 형진이가 대학교 1학년 때, 2002년 8월 태국에 열흘 정도 갔었는데 이때 몸은 불편하지만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엄마만 고생하면 형진이도 세상구경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희 어머니 생신 때문에 미국에 간 적이 있어요. 2004년 7월 8일 도착했는데 지금도 기억해요. 7월 9일 또 호흡이 끊어지고 동공 열리고. 몇 분만에 돌아오긴 왔는데 우리가 간 미국 병원이 너무 작은 데라서 형진이 같은 애 감당하기엔 시설과 의료진이 적당하지 않았어요. 거기에 두 달 있는데 서울 올 길이 없더라구요(형진씨가 아프기 때문에 쉽게 이동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갑자기 친구 한 사람이 생각나 전화했어요. 친구 남편이 당시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원이었는데 길이 없나 알아봐 달라 했어요. 하루 있다가 전화 왔는데 (유 의원이) 그 당시 국방위원장이었어요. 그분이 미8군 사령부한테 전화해 이 학생이 이렇게 됐는데 데려올 방법 없냐고 했더니 그 장군이 듣자마자 내가 꼭 책임지고 도와주겠다 하더라구요. 어떻게 이런 길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사령관이면 별 4개 아니겠어요.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도 ´그렇게 좋은 일 하면서 나한테 물어볼 필요 있냐. 의회에서 뭐라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내가 그 경비 내겠다´ 라고 말했다고 했어요.

→무척 고마웠겠네요.

-미국에 세금 낸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나도 남을 위해서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형진이처럼 아픈 애들을 위해 강남세브란스병원에 기부하는 게 그래서예요.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 자가재활호흡방법을 통해 서서히 나았어요. 2006년 8월 24일 퇴원했어요. 그날은 우리 가족만의 광복절이에요. 긴 악몽꾼 것처럼 다가왔어요. 그 잃어버린 2년의 시간이. 그래서 매해 그 날마다 1년 동안 기부금 준비해서 근육병 호흡재활센터에 기부해요(이씨는 2006년부터 매해 5000만원 이상 혹은 1억원 정도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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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옥씨가 지난 2일 서울 개포동 자택에서 ‘연세대 호킹’으로 불리는 아들 신형진씨의 손을 만지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이원옥씨가 지난 2일 서울 개포동 자택에서 ‘연세대 호킹’으로 불리는 아들 신형진씨의 손을 만지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아드님 대학 성적이 좋던데.

-대학만 9년 다녔어요. 컴퓨터 양쪽에 적외선 센서 카메라가 있고 형진이 눈에 적외선 빔을 쏘는 삼각구도가 이뤄져 있어요. 눈동자 움직이면 커서가 눈을 깜빡하면 클릭되는 거예요. 이 컴퓨터를 사기 위해 제품을 만드는 미국 회사에다가 이 영어 실력(본인은 영어 못한다고 함)으로 편지까지 썼어요. 일본 대리점에 있다고 해서 형진이 아버지가 일본까지 가서 2003년 사 가지고 왔어요. 이후부터는 날개가 달린 거죠. 그때부터 나는 까만 보조의자에 앉아서 형진이가 원하는 대로 클릭하기 바빴어요.

→키우면서 뭐가 힘들었나요.

-숨 못 쉬는 모습 보는 거였어요.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 대학교는 학문의 깊이가 다르지 않나요. 초등학교 때 놀고 중·고등학교 때 공부 좀하고 대학 때 수학 부전공 등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미국 가서 고생하고 많이 약해졌는데. 자기 기능 살리는 물리치료 받으면서…. 근육병 자녀 키우는 엄마들도 숨 못쉬는 것 같아요. 잠시도 마음을 놓고 안심할 수 없잖아요. 남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다른 근육병 앓고 있는 남자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엄마는 좋겠다. 숨 편하게 쉴 수 있어서.”

파일 4. 미국에서 폐렴 걸려 사경, 미군 도움 받은 사연



→정부나 사회에 원망은 없었나요.

-보건복지부에서 활동보조인 둘 수 있도록 했어요. 작년 2학기 활동보조인하고 같이 다녔죠. 엄마가 나이들면서 힘 빠지고 혼자 형진이를 들고 다니는 게 힘들더라고요. 또 형진이가 책을 읽으려면 누군가 넘겨줘야 하고요. 그 제도가 생긴 지 3년 된 듯한데 그런 제도를 둔 정부에 너무 고맙더라고요. 다만 조금 늦게 그런 제도를 알았죠. 사랑의 빚이 너무 많아요.

→졸업했으니 취업은요.

-두세 군데에서 오라고 선배한테 들었는데 형진이가 대답 안 하고 있어요. 당분간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급하게 서둘러 취업할 필요 없고. 컴퓨터 과학 평생할 것 같으니까(이 부분에서 형진씨는 어머니를 불러 기사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항간에 형진이가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제의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도는데 그런 일 없어요. 오보예요.

→장애인이라 취업하기 쉽진 않을 텐데요.

-벌금을 내더라도 안 뽑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얼마나 생산성이 있을지 잘 모르니까. 미국에서는 그런 일 없는데 아무리 돈이 들어도 편의시설 다 해주는데 우리나라는 아니에요. 연대 나온 선배들이 조언해주고 이래저래 기회가 올 것 같아요. 제안이 전혀 없다고 하면 선배들과 의논해 보지 않겠어요. 선배들이 이런 말 하더라고요. 돈을 벌지 않더라도 나라에서 하는 일들 중에 연구원이나 팀 일원으로 형진이가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요. 5년이 걸려도, 10년이 걸려도 되는 프로젝트 그걸 해보는 게 어떠냐고. 생각 중이죠.

파일 5. 정부에 하고 싶은 말, 앞으로 계획



→형진씨가 돈을 벌어본 적도 있다면서요.

-2008년 작은 벤처회사에서 일하는 한 선배가 컴퓨터로 주문대로 만들어서 보내는 일을 형진이한테 시켰어요. 참, 형진이 별명이 뭔지 아세요. 4000원이에요(이씨와 도우미 아주머니, 기자 모두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 그 선배가 미국에서는 시급이 8000원이라며 괜찮겠냐고 하는데 형진이가 ‘전 4000원이면 됩니다.’ 그랬어요.

→형진씨한테는 엄마 이상일것 같은데.

-(이씨가 형진씨 쪽을 바라보며) 형진아 너는 비싼 인력 쓴다. 돈 10원도 안 주고 (또 웃음이 터졌다). 기사 노릇, 간병인 노릇, 비서 노릇, 책 빌려와라, 반납해라, 교수님한테 가서 이 말해라, 저 말해라, 물어봐라 등등등 온갖 할 일이 많아요. 이런 비서가 어디에 있어요. 형진이가 언제 숨이 끊길지 모르니까 정기적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30, 40년을 놀아본 적이 없어요.

→좋은 계획 있나요.

-특별히 어떻게 살아야겠다, 명쾌하게 그대로 되진 않아요. 내 삶이 다음 주 금요일에 뭘 하겠다는 약속 못해요. 이유는 형진이 컨디션 안 좋으면 약속 취소하고 형진이를 지키고 봐야 하니까. 소원은 형진이 근육병 치료제가 없으니…. 어디선가 연구하겠지요.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빨리 약이 나오라 기도하고 있어요. 내 아이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근육병 있는 애들 좋아지지 않겠어요. 백혈병 약 없었는데 개발된 것처럼 이제는 근육병도 치료제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2011-03-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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