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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정보 나누고 치료의지 다지는 1박2일

투병정보 나누고 치료의지 다지는 1박2일

입력 2011-06-01 00:00
업데이트 2011-06-0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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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환우들의 모임 ‘루산우회’ 캠프 참관기

지난 28일 오후 5시 충남 금산군 마달피삼육수련원. 화창한 날씨 속에 이름표를 목에 건 사람들이 모여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족끼리 배드민턴을 치는가 하면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따로 모여 축구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모두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백혈병 환우들의 모임인 ‘루산우회’의 일곱 번째 캠프가 이곳에서 열렸다. 루산우회는 백혈병(leukemia)의 영어이름에서 따와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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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산우회 회원들이 지난 29일 충남 금산군 마달피삼육수련원 앞에서 캠프 일정을 마무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루산우회 회원들이 지난 29일 충남 금산군 마달피삼육수련원 앞에서 캠프 일정을 마무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루산우회를 만든 최종섭(58)씨는 덥수룩한 수염에 구릿빛 피부의 도드라진 외모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백혈병 환자들은 약물 부작용으로 얼굴이 창백하고 붓는 특성을 보이지만 최씨는 산을 타느라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탓에 누가 봐도 백혈병 환자는 아니었다. 2000년에 백혈병이 발병했다는 최씨는 “의사한테 전부 다 꼬치꼬치 묻기도 어려워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병원 안에서 백혈병 환자들을 상담해 주다가 주치의인 김동욱 교수와 상의해 루산우회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루산우회 소속 백혈병 환자들은 매월 산을 오르기도 하고, 해마다 캠프를 열어 투병 의지를 다지고 의료진과 소통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캠프에 참여한 환자들의 병력과 치료 경험은 비슷하지만 사연은 제각각이다. 16년째 투병 중인 주모(47)씨는 1997년 3월 형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아 완치됐다가 다시 재발했다. 그는 완치 후 괜찮겠지 싶어 건강관리에 소홀했던 게 문제였던 듯하다고 말했다. “백혈병에 걸리기 전 일상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데다 술과 담배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쁜 생활습관을 완치 후에도 깨끗이 털어내지 못한 게 문제였던 것 같다.”는 주씨는 “재발 후 글리벡을 투약하고 있는데, 지금은 괜찮다.”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서 상심과 함께 또 다른 희망이 묻어났다.

정모(45)씨는 2000년부터 백혈병과의 지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치료제에 적응이 안 돼 구토증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정씨는 “그나마 가족들이 나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어 행운이다. 루산우회에서 동료 환우들을 보면서 치료 의지를 다진다.”고 귀띔했다. 어둠에 잠긴 밤 10시. 캠프의 하이라이트 격인, ‘환우들의 멘토’ 김 교수의 특강이 이어졌다. 강당에 모인 230여명의 환자와 가족들은 김 교수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그의 강연을 경청했다. 휴대전화로 김 교수의 강연을 녹음하는가 하면 꼼꼼히 필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신약이 나와 백혈병 완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김 교수의 말에 모두가 기대에 부푼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의가 끝난 후 젊은 부부가 환아인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김 교수를 찾아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의사인 한 참석자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대신해 캠프에 참석, 김 교수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애써 태연한 듯했지만 환우들의 얼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김 교수는 “결코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나와 함께 가자.”고 격려했다. 더러는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29일 오전 10시 30분. 환우들이 씩씩하게 수련원 인근의 산에 올랐다. 겉보기와 달리 대부분이 환자들인 탓에 산책하듯 담소하며 걷는 시간이었지만 오랜 투병생활에 지친 환아들은 “숲길이 정말 좋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로 투병생활 10년째인 주부 박모(57)씨는 “김 교수님 말씀대로 치료를 받으면서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언론에서 찾아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하지만 지금은 병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자신있게 이런 말도 한다.”며 걸음을 내디뎠다.

1박2일의 짧지만, 결코 짧지만은 않았던 루산우회의 캠프였다. 얼굴에 드러나는 웃음보다 마음속에 숨겨둔 투병 의지가 더 간절한 환자들은 캠프 내내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곁을 내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걸으며 고통 속에서 희망을 일구고 있었다.

글 사진 금산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2011-06-0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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