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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은 VIP에, 직원은 친척에 “돈 빼라”

임원은 VIP에, 직원은 친척에 “돈 빼라”

입력 2011-06-22 00:00
업데이트 2011-06-2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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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전 저축은행 ‘특혜 인출’ 전모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원들은 영업정지가 예상되자 거액을 예금한 ‘VIP’ 고객 40명을 추려 예금 인출을 종용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사람 모두가 ‘고객’이었지만, 임원들이 ‘고객’으로 여긴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5000만원 이상을 예금했다가 돌려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들이 격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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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21일 부산저축은행의 예금 부당 인출 사건에 대한 브리핑 도중 손을 이마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21일 부산저축은행의 예금 부당 인출 사건에 대한 브리핑 도중 손을 이마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검찰에 따르면 구속기소된 박연호(61)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과 김양(59) 부회장, 강성우(60) 감사는 지난 2월 15일 오후 8시 30분쯤 금융위원회로부터 계열 5개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신청서 제출을 요구받으면서, 자신들의 은행이 조만간 영업정지에 들어갈 것을 감지했다. 일단 부산·대전저축은행 2곳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김 부회장은 다음 날 오후 5시쯤 부산저축은행 안아순(59) 전무이사에게 영업정지 예정 사실을 알렸고, 안 이사는 거액을 맡긴 ‘VIP’ 고객 7명에게 “예금을 인출하라.”고 권했다. VIP 고객 7명이 찾아간 예금은 총 28억 8500여만원. 이를 본 부산저축은행 창구 직원들이 동요했다. 일제히 전화기를 들어 은행에 돈을 맡긴 가족과 친인척, 지인 등에게 “돈을 빼라.”고 했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가지고 있던 개인 정보를 참조해 자신들이 직접 인출했다. 은행 영업이 이미 끝났음에도 총 312건, 28억 6000여만원이 빠져나갔다.

대전저축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은행 김태오(60) 대표는 2월 15일 오후 5시쯤 파견감독관에게서 금융위가 영업정지 신청을 요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었고, 다음 날 오후 3시 30분쯤부터 총무과장에게 VIP의 예금 인출 지시를 내렸다. 총무과장은 5000만원 이상 예금자 33명에게 인출을 권유했고, 29명이 22억여원을 찾아갔다. 영업 마감 시간 즈음에는 창구 직원들까지 나섰고, 71건 5억 5500만원이 추가로 인출됐다. 부산·대전저축은행은 ‘특혜 인출’ 러시 다음 날인 2월 17일 영업정지됐고, 19일에는 부산2·중앙부산·전주저축은행 등 다른 계열사도 모두 영업정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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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파악한 부산저축은행 ‘특혜 인출’ 의혹의 전모다. 검찰은 김 부회장과 안 전무, 김 대표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또 예금 인출을 종용한 창구 직원 85명은 불입건하는 대신 금융감독원에 징계처분을 요청했다. 징계를 받으면 앞으로 5년간 상호저축은행 임원으로 취임할 수 없다.

검찰은 영업정지 소식을 사전에 전해 듣고 예금을 인출한 사람에 대해서도 예금보험공사 등과 함께 환수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총 85억여원에 달한다. 민법상 부인권(否認權·파산자가 파산 선고를 받기 전 채권자를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이 행위 효력을 상실토록 하는 권리)을 적용하면 환수가 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5000만원 이상의 예금을 친인척 및 지인들 명의로 분산한 경우가 다수 드러났다.”며 “실예금주 기준으로 합산한 금액에 대해서만 예금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당초 이 사건은 금융당국이나 정관계 고위층이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방침을 사전에 누설했다는 의혹이 많았다. 우 기획관은 그러나 “예금 인출자를 전수조사하고 이들의 통화내역 20만건을 분석했지만, 금융당국이나 정·관계 고위층이 연루된 정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부산저축은행그룹에 영업정지 신청서 제출을 요청한 행위도 선례가 있는 행정절차로 보이고, 공무상비밀누설죄 적용은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영업정지 직전 예금자에게 돈을 찾아가게 한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며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2011-06-2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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