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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전화속 피란지 졸업식의 학장 호소

6ㆍ25 전화속 피란지 졸업식의 학장 호소

입력 2011-06-24 00:00
업데이트 2011-06-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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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창립자 김창숙 선생 졸업사 발굴

”우리가 이 성대한 식전(式典)을 거행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3.8선 이북 전선에서는 우리 국군 장병 몇 백, 몇 천 명이 총칼에 선혈을 뿌리고 사장(沙場)에 백골을 묻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6ㆍ25 전쟁 휴전 협정을 4개월여 앞둔 1953년 3월 말. 피란지 부산의 성균관대학 임시 교사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한 교육자의 절절한 호소가 울려퍼졌다.

24일 성균관대에 따르면 학교 창립자이자 당시 학장이던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이 지난 1953년 3월21일 성균관대학 3회 졸업생 65명을 위해 친필로 쓴 졸업식 훈사(訓辭) 자료가 최근 발견됐다.

길이 2m38cm가량의 두루마리에 선생이 붓으로 직접 쓴 이 훈사에는 한 치 앞을 가늠하지 못했던 전쟁 상황에 놓인 학생들에 대한 스승의 애타는 심경이 담겨 있다.

선생은 “세계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적 존재인 성균관대학이 송두리째 불구덩이에 날아간 것은 우리나라의 커다란 손실”이라며 “남한 끝머리 부산 한 모퉁이의 쓸쓸한 임시 교사 밑에서 구차한 졸업식을 치르게 됐다”고 통탄했다.

또 “이 가혹한 전화(戰禍) 중 (일어나는) 모든 비상사태에 대해 여러분들의 앞길에 몇 가지 권장하고 격려하는 말을 드리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용솟음치는 감상을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당시 성균관대는 1953년 4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고 그해 7월 서울로 다시 옮겨오기까지 부산에서 천막 교사와 임시 교사 등을 전전하며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훈사에는 인민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당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강한 도덕 의식과 국가관을 당부하고픈 선생의 마음도 배어난다.

선생은 “대한민국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날카로운 눈매로 살펴보라”며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하늘이 부여한 의무와 사명은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며, 죽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죽는다는 한결같은 길”이라고 당부했다.

또 ‘북한군을 하루라도 빨리 물리치고 남ㆍ북한을 통일해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 단군이 내려 주신 유일한 생명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3.8선 이북 전선에서는 국군들이 싸우고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우리가 안전한 후방에서 환호하겠느냐’고 묻는 대목에서는 주로 서울 이북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전시 상황도 엿보인다.

일제 강점기 교육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 선생은 조선시대 성균관을 계승해 1946년 9월 성균관대학을 창립, 1946~1956년 초대 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유림(儒林)계를 단합해 활발한 항일운동을 벌였던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근현대사 자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군대에 징집되지 않았던 학생들은 당시 졸업을 하면 당장 전선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학장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전하려고 심산 선생 자신이 친필로 썼다는 것이 의미 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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