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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회사 대포통장 1년간 1000개 어떻게 만들었지?

유령회사 대포통장 1년간 1000개 어떻게 만들었지?

입력 2011-06-28 00:00
업데이트 2011-06-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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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설립 절차 허술ㆍ금융기관 대충 개설 ‘허점’ 이용

불과 1년만에 유령회사 92개를 세우고 대포통장 956개를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범행을 대포통장 판매 조직이 손쉽게 할 수 있었던 데는 허술한 법인 설립 절차와 금융기관의 계좌 대충 개설이라는 커다란 구멍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대포통장이 불법 도박사이트나 보이스피싱 조직 등으로 넘어가 또 다른 범죄에 악용돼 일반인들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나 대포통장 자체가 범행 당사자와 계좌 명의자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추적을 따돌리고 있기 때문에 성과가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너무 쉬운’ 법인 설립 =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2개 조직은 상법이 개정되면서 법인 설립 조건이 매우 쉬워졌다는 점을 악용했다.

정부는 기업 활동을 돕기 위해 규제 완화 차원에서 법인 설립 조건을 완화했으나 엉뚱한 곳에서 범죄에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법인을 설립하려면 5천만원 이상의 주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2009년 5월 상법 개정 이후 100원 짜리 주식만 있어도 누구나 법인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또 법인 명의로 각 은행에서 계좌 3개도 개설할 수 있다.

경찰에 적발된 박씨와 강씨는 이런 빈 틈을 이용해 제조업과 유통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 다양한 유령회사를 세웠고 시중 19개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며 유령법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은행들이 특별한 의심 없이 이들이 만든 유령회사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줬다”고 전했다.

◇위임장만 있으면 ‘만사형통’ = 이들이 법인 설립과 통장 개설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는 바로 위임장에 있었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위임장만 있으면 본인이 아니더라도 법인을 만들고 공인인증서를 여러 개 발급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노숙인들을 회유해 위임장을 받아내거나 인터넷 대출광고를 통해 알아낸 개인정보로 위임장을 허위로 만들었다.

신용도가 낮았던 A(39.인천 거주)씨는 지난 2월초 인터넷 대출광고를 보고 돈을 빌리기 위해 구속된 남씨 등에게 신분증 사본과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사본을 팩스로 보내줬다.

A씨의 개인정보를 확보한 남씨 등은 A씨의 위임장을 거짓으로 만들고 지난 2월 동수원등기소에서 S법인, 남양주등기소에서 T법인을 각각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이어 각각 동수원세무서와 남양주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한 뒤 수원과 남양주 소재 A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했다. 법인 명의로 휴대전화도 3개나 개설했다.

이들은 이렇게 만든 법인통장 2개를 개당 40만원씩 받고 인터넷도박사이트 운영자에게 팔았다. 피해자 A씨는 한달 뒤 요금 미납으로 통신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에야 자신의 명의가 도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2범죄 악용되는 ‘대포통장’과 ‘대포폰’ = 이들이 만든 ‘대포통장’과 ‘대포폰’은 또 다른 범죄의 수단이 됐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유령법인 명의의 통장을 대부분 인터넷 도박사이트와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팔았다고 진술했다. 이중에는 중국과 필리핀에 있는 조직에게까지 넘어갔다.

대체로 도박사이트와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거점과 서버를 해외에 두고 피해자들에게 대포통장으로 계좌이체를 시킨 후 돈을 빼내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한다.

경찰은 범행 당사자와 범행에 사용된 계좌나 휴대전화 명의자가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이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110억원이 묻혀 화제에 올랐던 전북 김제 마늘밭 사건 역시 불법 스포츠토토를 운영했던 범인들이 대포통장을 통해 범죄수익금을 모았으며 이를 다른 사람을 통해 받아서 밭에 묻은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대포폰의 경우 ‘제작’에 대한 처벌조항이 있으나 ‘유통’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경찰이 범죄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속된 박씨는 유령법인 명의 대포통장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포폰 1천여개를 개당 30만원에 사들여 퀵서비스를 이용해 개당 40만원을 받고 팔았다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다.

하지만 현행 법규에는 대포폰을 제작한 사람에 대해서는 전파법 위반으로 형사입건이 가능하지만 대포폰을 매매한 사람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통장과 대포폰은 범죄조직들이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는 대표적인 수법이다”며 “범죄 예방을 위해 확인 절차 강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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