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투병 끝에 우울증 빠져 세번 자살시도… 김미정씨의 ‘인생 반전’
국내에서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이식대기자는 2만여명. 이 가운데 신장이 필요한 만성신부전 환자가 1만여명이나 된다. 그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성신부전은 신장이 완전히 망가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할 때 노폐물이 몸 속에 축적되는 병이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고 평생 혈액투석을 받을 수도 있다. 독소가 몸 안에 쌓이면 ‘요독증’ 등의 병이 생겨 사경을 헤맬 수도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신장 이식밖에 없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장기이식을 받기 위해서는 평균 4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에는 1~2일마다 한번씩 병원을 찾아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늘만 있으리란 법은 없다.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선뜻 자신의 신장을 내주는 가슴 따뜻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김미정씨
“그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제가 살아가는 힘을 얻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삶을 놓고 싶을 정도로 고통 속에 살았지만 만성신부전 환자들을 도우면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15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 김미정(47·여)씨는 누구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정모(34·여)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하나 떼어주기 위해서였다.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정씨는 만성신부전 때문에 이틀에 한번씩 투석을 받아야 해 파트타임직을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살았다. 새로운 삶을 살려면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지만 가족들도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그에게 신장을 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이식 서약서를 제출한 김씨와 정씨는 운명처럼 만났다. 정씨는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김씨가 소중한 장기를 떼어주기 위해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수술 시작 전 김씨는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환자를 돕는 일인데”라며 이내 마음을 편하게 먹고 눈을 감았다. 이식수술을 마치기까지 6시간이나 걸렸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먼저 수술방을 나온 김씨는 경황이 없는 가운데도 정씨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는 “과거 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그때 건강을 회복하면 꼭 그들과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신장 기증자인 김씨의 삶은 정씨 못지 않게 기구했다. 김씨는 1994년 ‘자궁유착증’이라는 병을 얻어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홀로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딸이 ‘척추결핵’에 걸려 자신과 딸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투병생활을 하던 1996년 그는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자 등록을 하고 만성신부전 환자를 위한 후원에 나섰다. 2004년 자신과 딸 모두 건강을 회복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근육병 환자와 치매 환자를 돌보며 생활하던 그는 2008년 돌연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며 딸과 아들을 돌보면서 생긴 스트레스는 마음 깊은 곳을 할퀴어 상처를 냈다. 3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그때마다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그는 마지막 자살 시도 이후 “내가 죽는 대신에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그는 다시 병을 이겨냈다.
삶에 굴곡이 많았지만 그는 지난 15년간 한화손해보험에서 자산관리사(FP)로 근무하면서 단골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후 장기기증을 홍보했다. 사내에도 장기기증 서약서를 비치하는 등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돕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요즘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장기기증 홍보활동을 펼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의 정성에 감동해 부모는 물론 아들과 딸도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했을 정도였다. 그는 “신장기증을 한 뒤에도 봉사를 하며 생활하고 싶다.”면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생명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소정 장기기증운동본부 홍보팀장은 “최근 장기이식법 개정으로 우리 본부 같은 민간기관은 더 이상 장기이식 대기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면서 “앞으로 규제를 완화해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사랑과 나눔의 물결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2011-07-1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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