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백 명 수재민 중 불과 20여명만 대피소 머물러
우면산 산사태로 수백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임시 대피소는 텅 비어 있었다. 수해 주민들은 대부분 친척집이나 찜질방, 모텔 등을 전전하고 있으며, 일부는 대피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31일 오후 방배2동 남태령 전원마을의 임시 대피소가 차려진 마을회관은 어수선했다. 현장 복구 상황실이 함께 차려져 공무원과 군, 경찰, 소방서 관계자들이 계속 오가고 임시 진료소까지 한쪽에 자리 잡았다.
수재민 대피소로 마련해 놓은 한쪽 방은 텅 비어 있었고, 다른 좁은 방에는 여성 주민 대여섯명이 쪼그린채 모여 앉아 있었다.
미처 다 비우지 못한 식판을 들고 나오던 한 주민은 “다리가 아파 위쪽에 있는 교회 대피소까지 가지 못하고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을회관 공간이 부족해 마련된 위쪽 교회의 임시 대피소에도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남녀로 나뉘어 두 개의 방이 마련됐으나 남자들은 모두 복구 작업에 나가 한쪽 방은 텅 비어 있었고 다른 방에는 어린 아이들과 여자 주민 몇명만이 남아있었다.
한 주민은 “정치인이고 공무원이고 언론이고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며 “아무리 얘기해도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산사태로 전원마을 650세대 중 584세대가 피해를 봤지만 대피소에 머무르는 주민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주민 이모(32)씨는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신지 얼마 안 돼 바로 모텔로 모시고 가 나흘 밤을 지냈다”며 “임시 대피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은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에는 (대피소를 찾을) 겨를도 없었는데 어머니 건강이 좀 나아지셔서 오늘 처음 대피소로 왔다”며 “다들 예민해진 상황이라 같이 모여 있는 게 오히려 힘들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그는 “오늘 집에 들어찼던 흙을 다 뺐는데 옷가지 몇 개 말고는 건진 게 없다”며 “도저히 다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집에서 가구를 빼내는 걸 지켜보던 다른 여성 주민도 “대피소는 생각지도 않았다”며 “마침 가까운 곳에 친언니가 살고 있어 어머니와 함께 언니네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방배 3동 래미안 아파트도 40가구가 피해를 입었지만 임시대피소엔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오르내릴 수 없는 21층 주민 윤모(63)씨 부부만이 복구 작업을 도우며 머물고 있었다.
윤씨는 “다들 가까운 친척집으로 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친척집에 신세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마음이 불안해 여기 머물며 일손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방배2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대피소에 있는 20명 외에는 인근 찜질방이나 친척집 등으로 간 것으로 안다”며 “사고 직후 마을회관에 임시대피소가 마련됐음을 방송으로 알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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