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받고 보고서 뻥튀기” 이름 파는 앵벌이 교수

“돈받고 보고서 뻥튀기” 이름 파는 앵벌이 교수

입력 2011-10-12 00:00
업데이트 2011-10-1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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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면역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 A교수는 몇 년 전 단과대 학장의 소개로 한 업체의 연구용역을 받았다. 해당업체에서 발견한 광물의 면역증진 효과를 입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A교수는 2년여에 걸쳐 시험을 거듭했지만 뚜렷한 효능을 찾지 못했다. 보고서에 “소의 체중증가와 일부 면역세포 증가가 관찰됐다.”라고 썼다. A교수는 11일 “사용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정도의 의도였지만 업체의 요구가 강력해 학술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부분을 강조하기는 했다.”면서 “기간이 길어지고 동물에 대한 직접적인 실험이었기 때문에 받은 연구비가 수천만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해당업체는 발견한 물질에 대해 ‘A교수 실험실이 탁월한 효능을 입증했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으로 널리 알려진 A교수의 이름이 거론되자 축산업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실제 구매로도 이어지고 있다. A교수는 “실제 용역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유명대학’ 교수 연구실과 정부출연연구소, 국가공인시험연구소 등에서 진행된 연구용역이 과장·조작돼 악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험결과나 보고서에 대한 추후검증이나 과장·조작에 대한 제재는 전혀 없다. 나아가 상대적으로 연구비 확보율이 낮은 기초과학 실험실이나 수의대 등의 교수들이 명성으로 기업 연구비를 따는 ‘앵벌이 교수’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양대 B교수의 사례 역시 A교수와 비슷하다. 한 섬유기업이 신소재로 직물을 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B교수 연구팀은 결과물을 전달했다. 하지만 해당기업은 B교수 연구실이 국책과제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 자사 제품이 국책과제로 진행된 데다 신소재의 효능까지 B교수가 검증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B교수는 “돈을 받은 입장에서 기업이 과장을 하거나 일부 조작을 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어 “연구실 살림을 꾸려야 하는 교수들 입장에서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돈을 받았다고 검증되지 않은 보고서를 전달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학자의 양심을 파는 일”이라면서 “대학이나 연구소들이 뚜렷한 기준을 세워 사후 책임까지 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품성분분석이나 효능 등을 의뢰받아 검사하는 출연연이나 시험연구소의 보고서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잖다. 단순히 건강보조식품이나 화학제품의 성분분석을 의뢰한 뒤 보고서가 나오면 ‘인증 특허’라거나 ‘효능 입증’이라는 식으로 광고하고 있다. 공인연구소의 보고서는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는 경우에도 각종 홍보나 광고, 법정 소송 등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지만 어겨도 제재할 규정은 없다. 화학융합시험연구소 관계자는 “해당 업체들이 분석을 신청하면 시험해 결과를 전달할 뿐”이라면서 “이를 악용하거나 홍보에 이용한다고 해도 연구소가 알 수도 없고, 사후 조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2011-10-1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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