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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옛 터 가보니

신흥무관학교 옛 터 가보니

입력 2011-11-14 00:00
업데이트 2011-11-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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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공장으로 변해 흔적없어… 中공안 취재 제한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던 신흥무관학교는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다. 학교가 있던 자리는 옥수수밭으로 변했고 벽돌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흔한 표지석이나 기념비 하나 없었다. 학교가 세워졌던 지린(吉林)성의 고산자(孤山子), 합니하(哈泥河), 추가가(鄒家街) 3곳 모두 사정은 똑같다. 세월 탓이라기보다는 후손들의 무관심 탓이 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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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이 옥수수밭으로 변해 버린 중국 추가가의 신흥무관학교터.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흔적도 없이 옥수수밭으로 변해 버린 중국 추가가의 신흥무관학교터.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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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 중국 류허현 조선족 완전중학교 학생들이 답사단을 맞이하고 있다.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지난달 21일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 중국 류허현 조선족 완전중학교 학생들이 답사단을 맞이하고 있다.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지난달 20~23일 신흥무관학교 창설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진행된 현지 답사에 함께 나서 중국 지린성 일대의 유적지를 찾았다. 첫날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도착해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류허(柳河)현으로 이동, 조선족 완전중학교를 방문했다. 류복현 교장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신흥무관학교터를 차례로 들렀다. 추가가는 이회영·이상룡·김대락 선생의 가족이 집단으로 망명해 1911년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를 열었던 곳이다.

중국 공안은 조선족들의 민족의식 자극을 우려, 답사단의 차량을 따라붙기도 했다. 취재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한 현지 동포는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사관학교의 시초이자 항일투쟁의 핵심”이라면서 한국 정부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주문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4월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선생을 비롯, 양기탁·이상룡 선생 등이 세운 군사교육기관이다.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이자 초대 주필인 양기탁 선생은 1907년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결성했다. 대한매일신보와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양 선생의 혼이 밴 산물이다.

글 사진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2011-11-1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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