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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퇴임 앞둔 김지형 대법관

<인터뷰> 퇴임 앞둔 김지형 대법관

입력 2011-11-15 00:00
업데이트 2011-11-1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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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 땐 13명 고성 오가며 격론””다수결에 가려진 소수자 살피는 곳이 사법부”

각기 다른 13개의 정의가 존재하는 곳, 그곳이 바로 대법원입니다.”

오는 20일 퇴임하는 김지형(53) 대법관은 퇴근 후에 다시 블랙커피를 마시며 지난 6년을 ‘고3 수험생’처럼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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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연간 2만건이 넘는 상고사건을 처리하느라 모든 대법관들이 이처럼 격무에 시달렸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법원이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줘야 할 다툼의 종착역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법관은 그러나 재임 기간 줄잡아 100건은 넘겼을 전원합의 사건에 더 강한 애착을 가진 듯 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3명이 모여 종종 고성이 오갈 만큼 격앙된 토론을 벌이는 합의체 방식은 ‘13개의 정의 가운데 결국 최종 선언된 정의를 사회의 정의로 만드는 과정’으로 그 자체가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합의 중에도 다수보다는 소수의견 쪽에 주로 속해 이번에 함께 퇴임하는 박시환 대법관(58) 등과 함께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김 대법관은 이제 노동법 전문가로서, 후학을 양성할 모교의 스승으로 돌아간다.

김 대법관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살얼음 위를 걷듯이 지내온 생활이었는데 이제 법관의 삶이 주던 무거운 짐을 벗는다”며 홀가분해 했다.

그는 사법부의 남은 후배들에게 “유능한 법관보다는 좋은 법관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진보성향의 소수의견을 많이 내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왔다고들 평가한다. PD수첩 사건, 안기부 X파일 사건 등에서 최근까지도 일관되게 반대의견을 써왔다. 상당한 심적 압박감도 있었을 텐데.

▲사법부는 3부 가운데 국민 의사에 의한 선출과정을 거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이는 사법부가 해야 할 역할을 규정한다. 다수결에 의해 가려지는 소수자의 권리를 살피는 것이 바로 사법부 본연의 임무다.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그늘을 돌봐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몇몇 분들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반영해 어느 정도 숫자를 형성하면서 전보다 더 분명한 형태로 의견을 표시했고 그래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대법원의 기능에는 법령 해석의 통일도 있지만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적 측면도 있다. 그럴 땐 생각이 서로 다른 분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 생각을 대변해주는 목소리가 대법원에도 있구나라고 국민이 느끼게 된다. 역설적으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대법관들의 합의과정은 어떤가. TV 토론처럼 격론이 오가기도 하나.

▲매달 3번째주 전원합의를 하고 저녁을 같이 하곤 했는데 대법원에선 그게 참 독특한 경험이다. 법관생활 27년을 했는데 대법원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합의는 보통 주심이 발표를 하고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언성을 상당히 높여가면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꼭 사회적 관심사 뿐 아니라 법리적 논쟁도 시각이 굉장히 다양하다. 격론을 주고받으며 서먹해지면 저녁자리에서 기분을 풀기도 한다. 정말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꺼내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도 있다.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런 합의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튀는 판결 시비를 비롯해 최근 재판 관할지 이전결정까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반증하는 사례가 꽤 있다. 이제 남은 법관들 앞에는 이런 불신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있다. 후배 법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본질적인 문제인데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먼저 미국의 예를 들고자 한다. 과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 뉴딜 정책에 위헌 판결을 잇따라 내리는 연방대법원을 향해 대통령이 직접 ‘고집센 늙은이들’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 우리로 치면 일종의 튀는 판결이었던 셈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참다 못해 대법원을 송두리째 개편하려 했다. 70세 이상 대법관에 대해서는 그 수 만큼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수 있게 법을 바꾸려 한 것이다. 그런데 경제난 타개에 앞장선 대통령에게 여론이 오히려 더 냉담했다. 왜냐하면 미국 사회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사법부의 독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관에게는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나가야 할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사법부가 시민사회의 무한한 신뢰를 얻는 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능한 법관이기보다는 좋은 법관이 되라고 얘기하고 싶다. 법령을 능숙하게 해석해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보다는 법이 지향하는 근본적 가치를 고민해보라는 뜻이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거의 임기를 함께 했고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이 새로운 사법부 수장으로 취임했는데. 사법부가 달라질 것 같은가.

▲기본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사법부가 소외된 소수자 입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어느 정부이건, 어느 사법부 수장이건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법부와 정부는 언제든 갈등 소지가 있기 마련이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으라면.

▲먼저 업무상 재해 판결인데 출퇴근 사고가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한 사건이 있었다. 통상적 경로에 의해 출퇴근했다면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였는데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다수의견이 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또 하나는 성전환 사건이었다. 여성의 몸을 갖고 태어났지만 성 정체성은 남성인 사건이었는데, 그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공부를 많이 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고 할까. 이런 케이스야말로 법관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 사람은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까지 마치고 호적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대법관들이 허용해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외부 특강할 때는 꼭 언급하는 사례다.

--퇴임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다. 모교인 원광대에 로스쿨이 있으니까 강의를 맡을 것 같다. 또 하나는 노동법과 관련된 연구도 병행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 대법원 산하 노동법실무회 활동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할 생각이다. 근로기준법 주석서 3권이 작년에 나왔는데 학계에서 놀랍다는 반응이고 자극도 됐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부분도 발제를 마쳤는데 책으로 편집하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후배들 부탁도 있고 혼자선 안되지만 도움을 받아 빛을 보게 하고 싶다. 우선은 그동안 고생한 가족과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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