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2.6%만 열려… 평결, 재판에 적극 반영해야
살인, 강도 등 일부 사건에만 한정됐던 국민참여재판이 오는 7월부터 형사합의부 전체 사건으로 확대 실시될 예정이다.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들이 직접 배심원으로 참여해 법정공방을 지켜본 뒤 피고인에 대한 평결 후 형을 정하면, 판사가 이를 참고해 판결을 내리는 제도로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 자릿수대에 머물고 있는 저조한 신청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시행 첫 해인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살인, 강도, 상해치사, 성범죄 등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은 모두 2만 1912건이었다. 이 중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경우는 6.8%, 1490건에 불과했다.
피고인이 신청했다고 해서 모든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이 신청 후에 철회하는 경우가 많고, 법원이 배제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4년간 피고인이 신청한 1490건 가운데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사건은 574건이다. 결과적으로 대상 사건의 2.6%만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피고인이 여러 명인데 일부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피고인별로 따로 재판을 진행할 수 없어 이럴 경우는 배제한다.”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국민참여재판제도의 평가와 정책화 방안’에 따르면 조사대상 피고인 42명 가운데 16명이 ‘잘 모르고 신청했다가 철회했다’고 답해 신청당사자인 피고인조차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저조한 신청률과 신청 후 높은 취소율을 해결해야 국민참여재판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기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피고인 신청 방식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가 국민참여재판의 장점 등을 피고인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심원 평결 권고적 의견에 그쳐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의 평결을 판결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는 배심원 평결이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권고적 의견에 그치고 있다. 배심원단의 평결을 무시하진 않지만 최종 판결은 재판부가 내린다. 이를 두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이성기 교수는 “법관과 배심원들의 평결을 비교·연구할 수 있다.”면서 “한국의 독자적인 국민참여재판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선수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은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낸 경우 재판부가 받아들여 판결을 내려야 한다.”면서 “특히 만장일치로 무죄의견이 나오면 검사의 항소를 제한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대비해야 한다. 현재는 쟁점이 간단한 사건 위주로 진행하지만, 확대실시되면 재판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탁희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일이 오래 걸리는 사건들의 경우 재판 일수를 늘리면서 재판시간을 출퇴근 시간에 맞추는 등 배심원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성기 교수는 “재판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는 만큼 배심원이 되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2012-04-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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