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의 탈’ 쓴 불법다단계

‘합법의 탈’ 쓴 불법다단계

입력 2012-05-28 00:00
수정 2012-05-2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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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법인’ 강조하며 상품판매 강요 세미나 명목으로 참가비 요구

합법의 탈을 쓰고 불법을 일삼는 다단계 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업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업체’라는 사실을 내세워 교묘하게 불법·편법을 써 감독 기관이 단속과 처벌에 애를 먹고 있다. 이에 따라 피해자만 속출하는 실정이다.

● 최근 5년간 영업정지 1곳뿐

27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불법 다단계 업체 적발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영업정지를 당한 다단계 업체는 건강식품,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던 D사 1곳뿐이다. 과징금·과태료를 받은 곳도 지난해 1건씩에 불과하다.

그러나 합법 다단계 업체의 불법 행위는 적잖다.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며 꾀어 상품 판매관련 교육을 받도록 강요하거나 세미나비 명목으로 10만원 이상 받는 곳도 상당수다. 모두 ‘방문판매법’ 위반이다.

회사원 이모(26·여)씨는 최근 택시 운전기사로부터 “다단계 판매원” 제의를 받았다. 기사는 “판매원의 출발은 휴대전화를 업체를 통해 선불폰으로 바꾼 뒤 한두 명만 설득해 데리고 오면 5년 안에 부자가 될 수 있다.”면서 “퇴근 후 남는 시간만 투자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직접 업체를 찾아가 50여분간의 사업설명회를 듣다 내용에 공감하지 못해 자리를 떠나려 하자 업체 직원이 막아섰다. 설명회에서는 회사가 ‘공제조합과 시·도 지자체에 정식 등록된 공식 법인’이라는 점을 수차례 자랑했다. “1박 2일간 지방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라.”고도 했다. 세미나 비용 10만원 가운데 절반은 회사가 댄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다단계 판매원으로 일한 김모(35)씨는 “한 번 세미나에 참가하면 참가비 5만원에 교통비, 그룹 회비, 회식비, 테이프 및 책값까지 포함해 적어도 10만원을 쓰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식 판매원이 되면 하위 판매원을 관리하기 위해 세미나 비용을 대신 내주거나 책이나 밥을 사주는 이른바 헬프(help)비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연간 100만원 이상 사용하게 된다.”면서 “헬프비 지출이 많아야 성공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판매원들은 모두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업체 수백곳… 단속 어려워”

공정위 측은 이와 관련, “직접적으로 강제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조성해 판매원에게 연간 10만원 이상의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 역시 의무부과 행위에 해당, 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위반 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속은 쉽지 않다. 수백 개의 다단계 업체에다 수만 명에 달하는 판매원들의 사업 행위를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 수가 워낙 많아 민원을 통해 피해사례가 접수돼야 단속에 나설 수 있다.”면서 “실질적인 단속을 위해선 단속인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명희진·이영준기자

mhj46@seoul.co.kr

2012-05-2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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