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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잔재’ 국민교육헌장 기념비 존폐 논란

‘유신잔재’ 국민교육헌장 기념비 존폐 논란

입력 2012-10-07 00:00
업데이트 2012-10-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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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잔재 없애야” vs “나쁜 것도 역사”

유신의 잔재로 군사정부 종식과 함께 용도 폐기된 ‘국민교육헌장’이 기념비 형태로 여전히 전국에 산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전체주의 시대의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철거를 주장하는 측과 잘못된 역사도 보존 가치가 있다는 측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한복판에 ‘우뚝’ = 한해 1천만명 넘게 찾는 서울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정문을 지난 중앙도로를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왼편에 성인 남자 키의 2~3배에 달하는 비석이 솟아 있다.

가로·세로 각 4m 규모에 박정희 전 대통령 필체로 새겨진 국민교육헌장비(碑)다.

6일 오후 이곳에서 만난 교사들은 기념비의 존재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학생들과 함께 이 공원을 찾은 서울시내 한 중학교 역사교사 정모(49·여)씨는 “당시엔 학생들을 의식화하려 헌장을 만들었겠지만 지금 아이들에겐 이런 비석을 세워둔다고 해서 특정 국가관을 주입하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한모(43)씨는 “대한민국 어린이를 상징하는 공간에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유물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가치관이 무르익지 않은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당장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원에 놓인 수많은 동상이 각종 기념회나 후원회의 지원으로 관리되는 것과 달리 헌장 기념비 관리에는 서울시 예산이 들어간다.

비석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곳은 시 산하 서울시설공단. 서울시는 1974년 5월5일부터 기념비를 관리하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공단 측으로 업무를 넘겼다.

공단 관계자는 “예전부터 있는 것이라 그냥 두는 것일뿐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있다”며 “어떻게 보면 내버려두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 예산 투입과 관련해선 “비용이 얼마 안 돼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외에도 경남대 박물관과 경남 창원시의 산호공원, 경북 영주의 구성공원 등 전국 곳곳에서 국민교육헌장비가 보존·관리되고 있다.

경남대 관계자는 “기념비는 유신체제가 본격화하던 1970년대 전국에 무수히 많이 세워졌을 것”이라며 “있으니까 두는 것이지 ‘잔재’라고 해서 학교 시설물을 굳이 훼손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기념비 보존 놓고 의견 엇갈려 = 이미 생명을 다한 국민교육헌장 기념비를 공원 등 다중이용시설에 두는 게 적합한지를 두고 시민단체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렸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어린이대공원에 그런 유물이 버젓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헌장이 국가주의적 이념을 담고 있어서 교육을 안 하는 것인데 그런 잔재를 남겨둘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 게 개인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전체주의 가치관이 아니라면 관련 기념비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대공원의 조형물을 통해 박정희 시대의 아동정책을 연구한 건국대 권형진 사학과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어린이대공원은 헌장 기념비와 이승복 동상 등 유신시대의 유물이 가득한 공간”이라며 “아이들이 헌장의 의미를 모른 채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반면, 독재정권의 유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념비를 무조건 없애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으로 재단하려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문주현 교육문화실장은 “국민교육헌장 기념비를 지워야 할 과거사로만 보는 것은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있는 매우 단순한 시각”이라고 말했다.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 이희범 사무총장은 “과거는 좋든 나쁘든 우리의 역사인데 흠이라고 깨고 없애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박정희 군사정권을 독재로 몰아가면서 무조건 나쁘니까 다 묻어버리자는 것은 역사를 함부로 칼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사독재 잔재 ‘교육헌장’, 문민정부가 없애 =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40대 이상이라면 아직도 기억할 법한 ‘국민교육헌장’의 일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통 계승과 정신적 가치 확립, 국민의 국가의식 개선 등을 취지로 1968년 12월4일 선포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출범 이후인 1994년 전체주의 강조 등 군사독재의 잔재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헌장은 2003년 선포 기념일마저 없어지면서 공식적으로 최종 폐기 처분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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