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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관사터에…” 오싹한 괴담이

“경기도지사 관사터에…” 오싹한 괴담이

입력 2013-04-06 00:00
업데이트 2013-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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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의 역사가 배어 있는 관사가 사라지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대전 중구 대흥동 옛 충남지사 관사. 6·25전쟁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피란 와 한 달간 집무실로 사용한 역사가 있어 대전시 문화재 49호로 지정돼 있다. 충남도 제공
지방행정의 역사가 배어 있는 관사가 사라지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대전 중구 대흥동 옛 충남지사 관사. 6·25전쟁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피란 와 한 달간 집무실로 사용한 역사가 있어 대전시 문화재 49호로 지정돼 있다.
충남도 제공
관사 논란 핵심은 단체장 단순 숙소로 보느냐, 업무 연장 공간으로 보느냐다. 민선 이후 20년 가까이 ‘지방 청와대’, ‘호화 관사’라는 비난 속에 벌어진 이 논쟁은 진행형이다. 관선 때 도에서 내려온 시·군 과장까지 관사가 있던 시대는 먼 옛일이 됐지만 단체장 관사는 시시비비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관사가 ‘사저’(私邸)와 ‘공관’(公館)의 논쟁 사이에서 줄 타기를 하고 있지만 그곳에는 지방행정의 흔적이 오롯이 배어 있다.

관사는 대개 그 지역 명당에 지어졌다. 풍수지리가 없을 수 없다. 경기도는 도지사가 날개를 펴지 못할 때마다 어김없이 관사 터 얘기로 술렁인다. 현 위치가 산 사람을 위한 공간인 양택(陽宅)이 아니라 죽은 자의 자리인 음택(陰宅)이어서 도지사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대 도지사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미신(?)으로 볼 수만도 없다. 이인제 초대 민선 지사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내리 두 번이나 실패했고, 임창렬 2대 민선 지사도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3대인 손학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두 차례 낙마했다.

김문수 현 지사마저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참패했다. 김 지사가 사석에서 “관사 터가 안 좋아 역대 도지사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도지사도 꺼낼 정도이니 ‘관사 징크스’가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제천시장 관사는 시립어린이집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천시 제공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제천시장 관사는 시립어린이집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천시 제공
관사 터가 음택이란 것은 이곳이 옛날에 전염병 환자를 버리던 병막골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1967년 경기도청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하필 이 같은 팔달산 자락에 청사와 그 옆에 관사를 지은 것이다. 전·현직 경기지사들이 일이 꼬일 때마다 ‘관사 주변이 예전에 공동묘지였다’, ‘인근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가 죽었다’ 등 다른 으스스한 설까지 더해졌고, 임명직 지사까지 잘된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내내 떠돌았다.

청사와 관사를 수원 광교신도시로 이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란 소문이 나온다. 새 터를 잡을 때 풍수까지 본 것으로 미뤄 100% 거짓은 아닌 듯하다. 경기도는 ‘금구’(금으로 만든 단지) 터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불운이 단순히 풍수 탓인지, 수도 서울시장의 인지도에 못 미치는 경기지사로서의 한계 때문인지는 2016년 말 또는 2017년 상반기에 관사가 새 터로 이전한 뒤 도지사들의 앞날을 보면 드러날 것이다.

충남도는 지난해 말 내포신도시로 청사를 옮기면서 시민단체 비난에도 도지사 관사를 지었다. 대전 시절 관사 덕을 톡톡히 봐서다. 광역시와 달리 도 단위에서는 자택 출퇴근이 쉽지 않은 지리적 이유도 있다. 도 관계자는 “관사 장점도 수두룩하다”면서 “야간 긴급 실·국장 회의만 해도 청사처럼 과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줄줄이 나오지 않아 결정이 의외로 빠르다”고 두둔했다.

시립어린이집으로 바뀐 대전 서구 갈마동 대전시장 옛 관사에서 한 어린이가 그네를 타고 있다. 대전시 제공
시립어린이집으로 바뀐 대전 서구 갈마동 대전시장 옛 관사에서 한 어린이가 그네를 타고 있다.
대전시 제공
특히 외국인 손님을 모실 때 ‘효과 100배’라고 자랑했다. 충남도는 대전 시절 자매결연한 일본 구마모토에서 손님이 오면 관사로 데려가 식사를 대접했다. 박병희 지사실 비서관은 “일본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다. 외국에선 남의 집에 초청을 받으면 특별 대접으로 여겨 최고로 친다”면서 “음식점이나 호텔보다 친밀감이 훨씬 높아진다. 내 집처럼 편안하고 사람 냄새 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1932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 오면서 중구 선화동에 건립된 충남지사 관사는 6·25전쟁 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피란 와 한 달간 묵으며 국정을 보던 곳이다. 2002년 대전시 문화재 49호로 지정돼 문화적 가치까지 지닌 셈이다. 우람한 메타세쿼이아들이 치솟고, 세월이 덕지덕지 붙은 소나무 등도 운치 있다. 박 비서관은 “유실수도 많아 가을에 감과 은행 등을 수확해 손님이나 이웃들에게 나눠주면 무척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한때 충북지사 관사만큼 주민과의 소통 장소로 사랑받은 곳도 드물다. 이원종 전 지사 재임 때 관사가 그랬다. 이 전 지사가 관·민 충북지사로 있던 9년간 관사는 영락없이 ‘동네 사랑방’이었다. 1년에 서너 차례 반상회도 열렸다. 이웃 주민 20여명이 찾아와 회의를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전 지사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귀담아들으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친근감을 줬다. 이 전 지사 재임 시절 관사 인근에 살았던 주재구(61) 청주시 주민자치협의회장은 도지사 관사가 없어진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주 회장은 “관사가 우리 동네에 있으니까 자부심도 생기고, 지사 부인이 주민센터에 수시로 들려 민원 수렴도 했다”면서 “동네 주민들이 관사 주변을 청소해 주면 지사와 부인이 커피를 내오는 등 서로가 정을 나누며 살았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충북지사 관사 옛 모습. 현재는 리모델링해 충북문화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충북지사 관사 옛 모습. 현재는 리모델링해 충북문화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당시 관사는 이 전 지사가 외국 기업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며 투자유치에 공을 들이는 곳이었고, 대통령 초도 순방 시 영부인이 여성단체와 간담회를 갖는 1일 ‘영부인 집무실’이기도 했다.

반면 구설에 시달린 관사도 여럿 있다. 생뚱맞게 ‘파티 장소’로 쓰인 데도 있다. 유종근 초대 민선 전북지사 때 관사다. 유 전 지사는 아파트 관사가 불편하고 손님 영접이 어렵다며 부지사에게 물려주고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부지사 관사를 개조해 썼다가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결정타는 호화 관사보다 파티 장소였다는 점이다. 미국 유학파여서 그랬다지만 한국 정서로는 분명 돌출 행보였다. 유 전 지사는 대지 664㎡, 연면적 402㎡의 이 관사마저 비좁다며 ‘지방 청와대’로 쓰던 호반촌 관사를 부활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포기하는 수모를 당했다.

1970년대 지어진 호반촌 관사는 대통령 지방 순시 때 영빈관으로 사용할 방도 있었다. 관사를 중심으로 부촌이 형성되자 도둑이 들끓었다. 1980년대 모 관선 지사는 관사에 도둑이 들어 상당한 금품을 털렸는데도 신고도 못 하고 냉가슴만 앓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오히려 대통령 순방 때가 철통 같은 경비로 주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었다고 한다.

관사는 단체장의 ‘은밀한 거래’ 장소로 악용되기도 했다. 정부 사정기관의 주 암행감찰 대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관사에서 단체장이나 가족을 만나 뒷거래를 하다 적발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6년 4월에는 제주도 선관위 직원들이 도지사 관사를 급습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관사에 도 간부들과 대학교수, 언론인 등이 모여 당시 김태환 지사의 선거방송 토론회를 준비하는 현장을 덮쳤다. 선거법 위반 행위였다. 제주 선관위 관계자는 “관사는 입구부터 출입을 통제해 단체장이 은밀하게 유권자를 만나거나 신분 노출을 싫어하는 공무원 등이 모여 현직 단체장의 선거운동을 기획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논란을 떠나 관사 운영은 예산 낭비일까. 시민단체 등은 줄곧 이 점을 몰아붙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는 공직자도 적잖다. 충남도 박 비서관은 “대전 시절 도지사 관사에서 한 달에 7~8차례 손님을 모셨다. 여기서는 1인당 2만원이면 되지만 식당이나 호텔을 이용하면 최하 5만원 이상이 든다”면서 “호텔 대관료와 초대 효과 등을 따지면 관사 운영이 결코 비경제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충북도의 관사 폐지와 복원은 눈여겨볼 점이 많다. 이시종 지사는 청주시 상당구 수동 관사가 권위주의 상징에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쇄도하자 2010년 7월 충북문화관으로 리모델링해 개방했다. 유지비가 적잖기는 했다. 수리비 600만원, 난방비 500만원, 전기료 220만원에 4명의 청원경찰 인건비까지 연간 2억 3919만원이 들었다. 한데 이 지사는 옛 관사 폐지 1년 만에 예산 3억 5000만원을 들여 엉뚱하게 155.5㎡(47평)짜리 아파트를 새 관사로 매입했다. 도는 아파트 관사 유지비로 연간 400만원밖에 안 든다고 홍보하지만 문화원 전환 리모델링비 14억 3000만원에 해마다 유지비로 2억 3000여만원이 들어가는 옛 관사를 생각하면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문화원 관람객 수가 형편없이 적어 옛 관사 폐지가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관사를 잘 활용하는 곳은 강원도다. 최문순 지사는 2011년 4월 말 취임 직후 춘천시 봉의산 자락의 도지사 관사를 ‘봉의산 문순C네’로 이름 짓고 시민과의 소통 공간으로 개방했다. 도지사 숙소도 겸한다. 최 지사는 주말에 학생, 소외계층, 사회단체 등과 이곳에서 ‘도지사와 1일 대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기서 들은 의견이 도정에도 많이 반영됐다. 한강수계기금 분배 민관 태스크포스(TF) 구성과 북한이탈주민 도피 기간 교육지원 등과 같은 것들이다. 최근에는 판로가 막막한 산양삼 재배자들을 맞아 판로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봉의산 문순C네 놀러오세요!’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신청을 받는다. 평일에도 회의실, 북카페 등으로 개방해 도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 지사는 “관사 문제는 존재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관사가 도지사 혼자만이 아닌 주민과 더불어 쓰는 공간이 될 때 부정적 이미지를 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수원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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