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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진 ‘전주 여대생’…실종 만7년

감쪽같이 사라진 ‘전주 여대생’…실종 만7년

입력 2013-06-13 00:00
업데이트 2013-06-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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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이윤희씨, 2006년 6월 종강 후 행방 묘연경찰 “범죄피해ㆍ생존 등 모든 가능성 놓고 수사”

종강모임 후 행방이 묘연한 전북대생 이윤희(당시 29세)씨가 6월로 실종 만7년이 됐지만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20만건이 넘는 통신자료와 우범자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뚜렷한 용의자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수사가 제자리에 머물자 가족들은 초동 수사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딸의 행방을 찾아 애타게 동분서주하는 한편, 실종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경찰에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행방 묘연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4학년 이윤희씨는 2006년 6월 5일 오후 전주시 금암동 자신의 원룸에서 1.5㎞가량 떨어진 전주시 덕진동 음식점에서 교수, 학과 동료 40여명과 종강모임을 가진 뒤 다음날인 6일 새벽 2시30분께 혼자 살던 원룸으로 귀가했다.

이씨는 이화여대에서 통계학과 미술 등을 복수전공으로 6년간 수료하고 2003년 전북대 수의대 3학년으로 편입학했다. 졸업까지는 1학기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이씨가 당시 우울해 보이기는 했지만 특이점은 없었으며 모임 후 동료 남학생의 배웅을 받아 걸어서 원룸에 도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원룸에서 6일 오전 2시59분께부터 1시간가량 데스크톱 컴퓨터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이용했으며 검색창에 ‘112’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3분간 검색했다. 컴퓨터는 오전 4시21분에 꺼졌다.

앞서 이씨는 실종 나흘 전 학교 근처에서 휴대전화와 지갑이 들어 있는 핸드백을 날치기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틀 뒤인 8일 낮 이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학과 친구들은 원룸을 찾았으나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친구들은 경찰과 119구조대를 불러 현관문 디지털도어락을 부순 뒤 방 안에 들어갔고, 경찰 지구대 직원의 허락을 받고 방을 깨끗이 치웠다.

당시 방 안에는 이씨가 키우던 애완견 한 마리가 있었으며 방은 몹시 어질러져 있었다고 친구들은 회상했다.

결국 친구들이 방 안을 말끔히 청소하는 바람에 경찰은 초기 증거 확보에 실패하게 된다.

◇수사 방향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실종자 주변인물 수사와 행적수사, 탐문수사, 우범자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경찰은 여대생 실종 이후 연인원 1만5천여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데 이어 전북대 인근 건지산과 하천, 만화방, 찜질방, PC방 등에 대한 수색작업을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경찰에 접수된 제보들도 모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씨 가족이 범죄 용의자로 지목한 이씨의 친구에 대한 집중 조사를 펼쳤지만 실종과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이씨 친구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받았지만 ‘진실’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수사가 답보 상태에 머물자 ‘여대생이 이미 숨졌다’, ‘시신이 전북대 부근 하수구에서 발견됐다’는 등 악성 소문이 퍼져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경찰은 현재도 당시 수의학과 교수와 조교, 졸업생 등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이씨의 인터넷 계정과 금융계좌, 진료기록, 출입국 여부 등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씨는 실종 후 단 한번도 인터넷 계정에 접속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면식범에 의한 범죄 피해와 우발적인 범죄 피해, 생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수사를 펼치고 있지만 단서가 거의 없는 상태”라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애끓는 가족

이씨의 아버지 이동세(76)씨는 경찰 수사가 제자리에 머물자 막내딸이 머물렀던 전주와 강원도의 집을 오가며 딸의 행방을 찾고 있다.

그는 딸이 사라지자 딸의 원룸에서 4년을 지냈다. 그간 거리에서 전단을 돌리는 것부터 인터넷 검색, 관련단체 협조요청 등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이동세씨는 최근에도 경찰서를 찾아 딸 실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경찰과 이씨의 가족은 수십만 장의 전단지를 전국 각지에 배포하고 현수막을 내걸어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1억원의 사례금도 내걸었다.

2008년에는 이씨 실종사건을 다룬 인터넷 카페 ‘우리 다시 만나자’가 개설돼 7천500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이동세씨는 “딸이 살아 있다고 믿기에 계속 행방을 찾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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