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방치하는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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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1-18 00:00
수정 2014-01-1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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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유기’ 해마다 급증

1급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일주일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무정한 어머니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가족의 질병과 장애를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현실과 가족 구성원에 대한 책임의식이 약해지면서 친족에 의한 유기(遺棄) 사건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권기훈)는 유기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배모(47·여)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2007년 남편과 이혼한 배씨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홀로 자신의 딸인 신모(사망 당시 나이 17살)양을 양육해 왔다. 배씨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신양을 키우는 데 버거움을 느끼곤 했다.

신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색체 이상으로 걸을 수 없고, 백내장으로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 중증장애 상태였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워지자 배씨는 우울증까지 생겼다. 정신적·육체적 한계를 느낀 배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

배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아파트에 신양을 홀로 남겨 뒀다. 신양은 거실에서 음식물도 먹지 못한 채 나체 상태로 일주일간 홀로 남겨져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배씨는 5분씩 두 차례 집에 갔음에도 당시 폐렴을 앓고 있던 신양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집을 비우고 골프연습장을 출입하거나 여행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신양은 폐렴이 심해져 사망에 이르게 됐다.

재판부는 “신양이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상태인 것을 알면서도 홀로 방치했다”며 배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어 “배양의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이 탄원서를 작성했고, 뒤늦게나마 범행의 대부분을 인정하고 있는 점은 정상을 참작할 사유”라면서도 “사망에 이르기까지 신양의 겪었을 극심한 고통을 고려할 때 그 죄에 상응하는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뇌출혈 증세를 보이는 딸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일명 ‘지향이 사건’의 어머니 피모(25)씨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다. 피씨는 지난해 7월 생후 27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힘들다며 혼자 방에 두고 출근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친족에 의한 유기는 2010년 45건, 2011년 67건, 2012년 73건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극도로 자기중심적·개인주의적으로 바뀌면서 가족 구성원에 대한 배려나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의식이 현저히 약해졌다”면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통해 이러한 감정을 치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수 이특의 아버지가 병든 부모님을 살해한 뒤 본인도 자살한 사건처럼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게 되면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면서 “가족의 질병과 장애에 대해 사회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2014-01-1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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