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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된 아이들

유령이 된 아이들

오세진 기자
입력 2015-05-11 23:42
업데이트 2015-05-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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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교육 사각지대에 사는 미등록 이주아동 2만명

장미(11·여·경기 파주초 5)는 만능 재주꾼이다. 교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고, 동네 성당에서 가수로 통할 만큼 노래 솜씨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붙임성이 좋아 학교에서도 인기 만점. 하지만 장미는 오는 27일 한국땅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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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부모는 20여년 전부터 한국에서 살아온 필리핀인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일하다가 1994년부터 함께 살았고 2003년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2011년 장미 아빠가 강제추방을 당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웠다. 장미 엄마는 파주의 한 공장으로 직장을 옮겨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 3월 근무 중 단속을 나온 출입국관리본부 직원에게 적발됐다. 강제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필리핀으로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장미는 “아빠랑 언니, 남동생을 만나러 간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추방일이 다가올수록 우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 나 한국 사람 아니에요? 이젠 친구들 영영 못 보는 거예요?” 딸의 물음에 엄마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장미처럼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 신분으로 살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서류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다. 국적이 없을뿐더러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위험에 노출돼 최소한의 아동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한다. 현재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은 최대 2만명으로 추산된다.

안은주 이주노동희망센터 국제협력팀장은 11일 “미등록 이주아동은 한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일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입학이 허가되는 것 외에는 학교교육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주노동희망센터가 미등록 이주아동 가구 3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불법체류 노동자 부부들은 자녀가 아플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 팀장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감기에만 걸려도 병원비가 몇 만원씩 나온다”면서 “주로 변두리에 살다 보니 아이가 아파 큰 병원으로 나갈 때 드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특별체류 자격을 의무적으로 부여하고 국내 모든 아동의 교육권과 건강권 등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주아동 권리 보장 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은 “아동을 이용해 불법체류를 연장하거나 합법화하는 등 악용 소지가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인종, 출생, 신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1991년 한국도 가입한 만큼 정부가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이탈리아, 영국에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서는 동등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장기간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인으로 동화된 이주아동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5-05-1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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