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블로그] ‘황장엽 암살모의범’에 사기 혐의 끼워 넣은 檢, 왜

[현장 블로그] ‘황장엽 암살모의범’에 사기 혐의 끼워 넣은 檢, 왜

송수연 기자
송수연 기자
입력 2015-09-21 00:02
업데이트 2015-09-2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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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암살을 모의했다며 검찰이 50대 남성을 기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황장엽 암살모의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에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암살모의 피의자 중 한 명인 박모(54)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을 적용했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백재명)가 지난 14일 ‘사기죄’를 추가해 법원에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을 ‘주위적(主位的) 공소사실’로 유지하면서 사기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뒤늦게 끼워넣은 것이지요. 예비적 공소사실은 주위적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때에 대비하는 것으로, 이런 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국가보안법 말고 사기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지만, 한 꺼풀 뒤집으면 국가보안법에서 무죄 선고가 날 가능성에 대한 검찰의 초조함이 읽혀집니다. 검찰은 당초 박씨가 2009년 북한 공작원 장모씨의 지령을 받은 택배원 김모(63·구속기소)씨로부터 “중국과 연계된 조직에서 황장엽을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았는데 성공하면 돈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황 전 비서 암살 계획을 논의하며 정보 수집비 등 명목으로 2500만원을 받았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재판에서 “암살 작전을 실제로 실행할 생각이 없었고, 활동비 명목으로 돈만 챙길 목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가 검찰에서는 진술을 거부했기 때문에 ‘황 전 비서를 죽여 달라 했다’는 공범 진술에 따라 공소를 제기했는데 막상 재판에서는 다른 소리를 하니 부득이하게 공소 내용 변경의 필요성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이 처음부터 ‘국가보안법 처벌’이라는 틀에 갇혀 수사하고 판단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검찰이 ‘살인 미수’로 기소했다가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상해’ 등을 예비적으로 추가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과 사기는 차원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음달 중 박씨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올 예정인 가운데 재판부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지 사기죄를 적용할지, 피고인 박씨 못지않게 검찰도 자못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2015-09-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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