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가 거대 물체 2번 탐지·해경보고서 “해군 잠수함” 제주기지전대 “물고기떼를 착각한 우발사건일 뿐” 반박
“20년 뱃일을 하는 동안 처음 봤습니다. 물체가 엄청나게 커 물고기떼는 절대 아니에요. 잠수함 같아요.”제주 서귀포해양경비안전서에 16일 이른 아침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낚시어선 A호(9.77t)의 선주 박모(51)씨가 “선장과 같이 어군탐지기에 포착된 거대한 물체를 봤다”며 “바닷속의 그 물체는 물고기떼가 아니라 잠수함 같다”고 신고했다.
당일 신고내용을 조사한 해군제주기지전대(이하 제주기지전대)는 이들 어민이 물고기떼를 잠수함으로 잘못 본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잠수함 출현 신고는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사흘이 지난 19일 현재 ‘물고기떼였다’는 해군의 발표가 오히려 의문을 사며 주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있다.
물고기떼라고 하기에는 어군탐지기에 잡힌 물체가 너무 큰 데다 모양도 물고기떼가 포착될 때와 완전히 달랐다는 게 신고 어민의 주장이다.
또 크기가 큰 한 덩어리의 물체가 9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 탐지된 점과 두 번 모두 수심 90m에서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한 점이 물고기떼라는 해군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게다가 해경의 당시 상황 보고서에는 ‘제주기지전대 출항, 진해로 이동 중인 해군 잠수함으로 확인’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의문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어선의 어군탐지기로 정말 잠수함을 포착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직 국내외에서 알려진 적이 없는 거대한 규모의 물고기떼였을까?
‘잠수함 출현 신고’의 단서를 찾기 위해 당시 상황으로 되돌아가 본다.
박씨와 선원, 낚시손님 등 17명을 태운 A호는 신고가 접수되기 전날인 15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남동쪽으로 64㎞(40마일) 해상에 떠 있다.
이 해역은 성산항에서는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우리측 바다지만 한일 어업협정선과 그리 멀지 않은 망망대해다.
주변에는 물고기가 잘 잡혀 수많은 어선이 1㎞ 간격으로 줄지어 조업하고 있다.
밤이 완전히 깊어진 때쯤 박씨와 선원들이 놀라 소리치면서 조용한 밤바다의 적막이 깨졌다.
오후 9시 30분께 어군 탐지기(LOWRANCE 제품의 HDS10 기종)의 모니터에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물체가 잡힌 것이다.
한 덩어리의 이 물체는 수심 90m에서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쓱’ 지나가 이내 어군 탐지기에서 사라졌다.
오른쪽 탐지 화면에는 8∼10㎝ 크기로, 왼쪽 재연 화면에는 가로 길이를 완전히 꽉 채울 정도로 큰 크기로 보였다.
박씨가 쓰는 어군탐지기 모니터 크기는 15인치(약 38㎝)다. 모니터 화면의 오른쪽 반(19㎝)은 탐지 화면이며 왼쪽 반은 재연 화면으로 나뉜다.
탐지 화면에서는 음향을 이용해 돌아오는 음파를 측정하는 방법인 ‘소나’(Sonar)로 물체의 모양과 수중 깊이를 포착한 모양을 보여준다.
어초나 침몰선 안에 있는 물고기까지 탐지할 수 있어 많은 어선에서 사용하고 있다.
포착된 물체는 ‘점’ 모양으로 탐지 화면에서 나타난다.
다른 쪽 재연 화면은 탐지 화면에서 포착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확대해 보여준다.
그런데 만약 어군탐지기가 물고기떼를 탐지했다면 탐지 화면에 1㎜의 아주 작은 점들로 나타나고 재연 화면에서는 한 마리의 물고기 모양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돼 보여준다.
박씨가 설치한 어군 탐지기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만들어져서 물고기떼를 확연히 구분하기 위해 이 같은 기능을 갖추고 있다.
물고기가 많으면 재연 화면에서 보이는 물고기 모양의 크기가 커지지만 그 가로길이가 1㎝를 크게 넘지 않는 수준이다.
탐지 화면에서도 물고기가 잡혔을 때 아주 작은 점들이 서로 떨어져 보여 당시 탐지된 것과 확연히 다르다.
당시 탐지 화면에서 보인 큰 덩어리의 길이는 물고기가 잡혔을 때 보이는 점보다 80배 이상 길 정도로 컸다. 재연 화면에서도 물론 물고기떼를 표현하는 1㎝의 물고기 모양보다 훨씬 크게 보였다.
박씨는 “이때도 어군탐지기에 탐지된 물체가 물고기떼가 아니라는 확신을 했으나 9시간여가 지난 뒤엔 그 확신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낚시어선이 성산항으로 돌아오던 다음날인 16일 오전 6시 45분께 성산읍 앞 48㎞(30마일)에서도 비슷한 크기의 물체가 어군탐지기 모니터에 뜬 것이다.
이번에도 탐지 화면에는 한 덩어리에 크기가 8∼10㎝로, 재연화면에는 꽉 찬 모양으로 표현됐다. 그 물체가 수심 90m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도 같았다.
박씨는 “두 번째로 재연 화면에 뜬 모양은 잠수함 같아서 곧바로 해경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신고 내용을 제주기지전대에 전달한 서귀포해경은 16일 오후 4시 43분께 해군에 조사 결과를 전화문의해 ‘제주기지전대를 출항해 진해로 이동 중인 해군 잠수함으로 확인했다’는 답을 들었다.
당시 상황보고서에는 이런 내용과 제주기지전대가 해군 잠수함으로 확인한 시각이 낮 12시라고 작성돼 있다.
이 시각은 박씨의 신고를 전달받은 해군이 잠수함을 탐지하는 링스헬기를 해상에 띄워 조사한 직후다.
하지만 제주기지전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언론사 문의에 대해 ‘해당 낚시어선의 어군탐지기에 당시 포착된 것은 해군 잠수함이 아니며 물고기떼’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제주기지전대 관계자는 “제주기지서 나간 해군 잠수함이었다면 같은 기지서 전력이 나갔는데 그것을 모르고 헬기를 띄워 확인할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국회 국방위원회 김광진 의원(더불어민주당) 측은 “15일과 16일 어민의 신고가 접수된 부근 해상에서 해군 잠수함이 작전했는지, 혹은 다른 나라의 전력이 우리 해상을 이동했는지에 대해 국방부에 질의하는 등 신고 내용을 원점에서 다시 조사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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