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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모두 ‘허위서명’ 유혹에 빠졌다

보수·진보 모두 ‘허위서명’ 유혹에 빠졌다

입력 2016-03-21 15:20
업데이트 2016-03-2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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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교육감 주민소환 이어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추진 과정 ‘얼룩’절차 무시 진보진영도 ‘범죄’…‘홍준표 주민소환’ 서명부 심사 주목

보수도 진보도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했다. 가장 소중하다던 주민의 뜻도 왜곡했다.

경남에서 최근 보수진영이 추진한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과 진보진영이 진행하던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위한 주민투표 서명운동 진행과정서 드러난 일이다.

주민소환과 주민투표 모두 주민이 직접 나서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자체를 감시·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그런데 두 사안 모두 주관단체측이 자신들의 명분과 정당성에만 몰입하던 나머지 ‘허위서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중도포기하거나 무산됐다.

진보진영이 추진해온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은 총선 이후 서명 유효 여부 판정 등을 거칠 예정이어서 실제 주민소환이 실시될지 주목된다.

◇ 주민투표·주민소환 왜 시도됐나?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위한 주민투표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누적 적자와 강성노조 등을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강제 폐업하면서 시작됐다.

경남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운동본부를 조직했다.

운동본부에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전국농민회 부경연맹, 경난진보연합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위한 주민투표 법적 요건인 경남 유권자 20분의 1인 13만3천826명 이상 서명이 필요했다.

약 6개월간 서명을 받은 이들은 지난해 7월 8일 도민 14만4천188명 서명부를 경남도에 제출했다.

경남도는 곧바로 서명부 검증 작업에 들어갔고 9월 1일 대필 서명과 위ㆍ변조한 서명이 1만 건이 넘고, 서명부의 30% 이상이 무효 서명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도는 주민투표 청구인 4명을 경찰에 고발하는 한편 서명부 위ㆍ변조와 서명 위조를 한 서명 수임 행위자도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21일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서명요청 수임자 1명을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합천지역 주민 796명 명의를 무단으로 사용해 주민투표 서명부에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구속된 강모(44)씨는 지난 18대 총선 의령ㆍ합천 지역구 민노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경력도 있다.

또 합천농민회 회원으로 합천민주행동 대표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강 씨는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서명부를 위조한 이유에 대해 “홍준표 도지사의 주민소환이 성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며 “주민투표가 잘 처리돼야 이후에 주민소환도 잘 처리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운동본부 공동대표 4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지만 혐의를 찾지 못했다.

경남 보수단체가 주도한 진보 교육감 주민소환 서명 과정에서는 경남도 산하기관 개입이 드러났다.

박 교육감 주민소환 서명운동은 지난해 9월 2일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시작했다.

추진본부에는 서남부발전협의회와 공교육지키기 경남본부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박 교육감이 경남도 감사를 거부해 무상급식 중단 원인을 불러왔고 정치투쟁에 여념이 없다고 주민소환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박 교육감 주민소환에는 도민 10분의 1인 26만 7천416명 서명이 필요했지만, 이들은 50만 명 서명을 받을 것이라고도 공언했다.

곧 이들은 도내 18개 시·군에 지역본부를 꾸리고 수임인만 3만 명을 모아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명과정에서 경남도 산하기관 개입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도 선관위는 지난해 연말 홍준표 지사 측근인 경남FC 박치근 대표이사 소유 사무실에서 허위서명을 하던 현장을 적발, 경찰에 고발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교육감 주민소환 추진본부’는 서명 및 주민소환 추진 중단을 선언했다.

광범위하게 수사를 확대한 경찰은 경남FC 박 전 대표이사와 경남개발공사 박재기 사장 등 홍 지사 측근과 경남FC 직원, 경남개발공사 직원, 홍 지사 외곽 지원조직인 대호산악회 회원 등 24명을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입건했다.

홍 지사는 측근들이 연루된 것에 대해 공보관을 통해 사과했다.

◇ ‘허위서명’ 유혹 왜 뿌리치지 못했나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단체 주요결정사항을 주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제도다.

주민소환의 경우 주민이 직접 뽑은 지방공직자를 주민이 직접 해임할 수 있게 해 지방자치제도의 의의를 살리자는 논리에 따라 시행된 제도다.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모두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서명이 필수다.

하지만 최근 경남에서 실시된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이벤트는 허위서명으로 민주주의 절차 훼손이라는 민낯만 드러낸 채 중단됐다.

경남 진보ㆍ보수 시민단체들이 허위서명을 한 것은 양쪽 모두 도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무리하게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의 경우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는 됐지만 진주지역에 치우친 문제였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또 경남도가 주장한 ‘진주의료원 노조 특권’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재개원 서명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육감 주민소환 역시 갑자기 추진되면서 보수성향의 도민들로부터도 광범위한 동의를 얻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보성향 시민단체에서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을 추진하자 ‘맞불’성격으로 시작된 것이 박 교육감 주민소환 서명운동이다.

박 교육감 주민소환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남 유권자 27만 명 서명이 있으면 됐지만 운동본부측이 50만 명을 받겠다고 선언, 도민 서명이 무리하게 추진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홍 지사 주민소환이 ‘무상급식’ 중단 등 때문에 시작됐지만 역으로 박 교육감 주민소환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상급식을 한다는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진보ㆍ보수진영 모두 무리하게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을 진행해 ‘허위서명’을 동원했다는 오점만 남겼다.

◇ ‘홍준표 주민소환’은 어떻게 될까

경남에서 최근 시도된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이 불법 허위서명으로 얼룩져 무산됐지만 ‘홍준표 도지사 주민소환’은 아직 진행형이다.

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지난달 12일 홍 지사 주민소환투표 청구서와 경남 도민 35만 4천651명의 소환청구인 서명부를 도선관위에 제출했다.

이는 주민소환 청구 요건인 26만 7천416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도선관위는 4ㆍ13 총선이 끝난 뒤 청구인 서명부 확인 작업에 들어가 주민소환 청구 요건을 넘기면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번에도 도선관위의 청구인 서명부 심사ㆍ확정 과정에 ‘허위서명’ 등이 광범위하게 적발되면 또 무산될 수도 있다.

아니면 무사히 절차를 통과해 실제 투표에 들어가 유효 투표율을 따져 개표 여부를 정하고 최종 결론을 낼 수도 있다.

이번에 경남에서 드러난 두 건의 허명서명 사건은 민주주의 구현 과정에서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홍준표 지사는 진보진영에서 자신을 향해 주민소환을 추진하자 “주민소환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보수진영을 자극한 바 있다.

그가 말한 ‘맞불’ 주민소환은 무산됐지만 진보진영 역시 허위서명이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중대범죄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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