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주소 파악못해…법원, 고영숙 부부 소송 ‘각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이모 고영숙이 탈북자들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소송이 시작도 못하고 허무하게 끝났다.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이규홍 부장판사는 고영숙씨 부부가 국내애서 방송 활동중인 탈북자 3명을 상대로 낸 6천만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고 24일 밝혔다.
법원은 “원고가 피고 측 주소를 바로잡으라는 법원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기일을 열지 않고 각하했다”고 말했다. 각하란 민사소송법상 소송조건을 갖추지 않았을 때 내용 판단 없이 소송을 끝내는 조치다. 이번 사안은 절차 미흡 등이 이유가 됐다.
김정은 생모 고영희의 여동생인 고영숙씨는 김정은과 김여정이 스위스에서 유학할 당시 이들을 돌봤으며 1998년 남편 리 강(60)씨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오랜 시간 자취를 감췄던 부부는 지난해 12월 강용석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국내 방송에서 자신과 관련한 얘기를 한 북한 출신의 전직 국가안전보위부 요원, 전 총리의 사위, 전직 외교관 등 고위급 탈북자 3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부부는 이들이 지상파·종합편성채널에서 ‘고영숙이 김정은의 형 김정남을 쫓아냈고,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도박하거나 성형을 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은 소송 당사자가 직접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으며 외국인도 국내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있다. 한때 북한 최고권력층이었지만 현재 미국 시민인 부부의 소송은 이런 점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재판은 의외의 암초에 걸려 좌초됐다. 피고 탈북자들의 주소 파악이 안 된 것이다. 민사소송에서 피고의 주소는 원고가 파악해야 하지만, 일부 탈북자는 북한의 위협 때문에 국가의 보호를 받는 등 주소를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고씨 부부는 탈북자들의 직장 주소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아무도 소송 서류를 받지 않았다. 소송 제기 이후 넉 달째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법원은 결국 각하 결정을 내렸다.
법조계 관계자는 “소송대리인은 공시송달(서류 전달이 어려울 때 서류를 법원 게시판·관보 등에 게시하고 전달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 등의 수단을 택할 수도 있었다”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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