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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남겼다 생명을 나눴다

사랑을 남겼다 생명을 나눴다

김희리 기자
김희리 기자
입력 2016-09-08 23:04
업데이트 2016-09-09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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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기 기증의 날, 청계천 밝힌 20인 사연

“제 신장을 받은 성주와 20년째 연락하며 엄마와 아들처럼 지내요. 신장 기증으로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거죠.”

8일 경기도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명예퇴직한 뒤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희(64·여)씨는 1996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박성주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 함께 공무원을 하고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남편 김근묵(66)씨도 1995년에 신장과 간을 기증했다.

뇌사 장기기증인과 신장 기증인 20명을 캘리그래피로 그린 초상화가 ‘장기기증의 날’인 9일 오전 10시 서울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서 전시된다. 이산, 이상현 등 유명 캘리그래피 작가 20명이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유나, 김충효, 김교순, 박진탁, 홍윤길, 조시운, 김근묵, 이경희, 가브리엘 앤드루스, 박선화, 린다 프릴, 김기석, 이종훈, 신창자, 편준범, 박진성, 권재만, 정문규, 양진영, 윤세훈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뇌사 장기기증인과 신장 기증인 20명을 캘리그래피로 그린 초상화가 ‘장기기증의 날’인 9일 오전 10시 서울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서 전시된다. 이산, 이상현 등 유명 캘리그래피 작가 20명이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유나, 김충효, 김교순, 박진탁, 홍윤길, 조시운, 김근묵, 이경희, 가브리엘 앤드루스, 박선화, 린다 프릴, 김기석, 이종훈, 신창자, 편준범, 박진성, 권재만, 정문규, 양진영, 윤세훈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것 찾았을 뿐”

기증한 계기를 묻자 김씨는 “대단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고 단순하게 내가 나눠 줄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내 몸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이씨 부부 등 장기기증자 20명의 초상화를 9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 하부공간 ‘생명 나눔의 벽’에 공개한다. 생존해 있는 장기기증인 8명과 뇌사 판정과 함께 세상을 떠나면서 장기를 기증한 12명의 초상화로, 국민들이 기증인에게 보내온 감사와 응원의 문구를 캘리그래피로 디자인했다. 초상화는 재능기부로 완성했다.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장기기증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벌이는 행사다.

●국내 기증률 100만명당 9명 불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만 2974명이 장기기증을 실천했다.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2014년 우리나라의 100만명당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9명에 불과해 스페인(36명), 미국(27명), 이탈리아(23.1명), 영국(20.4명)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초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김기석(당시 16세)군은 기말고사를 며칠 앞둔 2011년 12월 2일 학원을 가는 길에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불과 10시간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 애를 세상에 남기려고…”

김군의 아버지 태현(56)씨는 “아들을 어떻게든 세상에 붙잡고 싶은 마음에 기증을 결정했다”며 “장기 기증은 떠나간 기석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끊는 부정은 신장, 췌장, 폐, 간, 심장 등의 기증으로 이어져 6명의 귀한 생명을 살렸다. 태현씨는 “간호사가 6명 모두 수술이 잘됐다고 말해 주더라”며 “기석이가 그분들에게 가서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충효(47)씨의 아내는 2013년 6월 1일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당시 15세, 12세, 7세에 불과했던 세 아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슬퍼하는 김씨 가족에게 병원 측에서 조심스레 장기기증 의사를 물어왔다. “할 수 있다면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자.” 처가 식구들이 외려 망설이는 김씨를 응원해 줬다. 김씨의 아내는 간, 신장 등을 기증해 모두 5명에게 새 생명을 전했다. “사후 장기기증을 신청한 상태였는데 아내를 떠나보내고 죽기 전에도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더군요. 아내가 남긴 사랑을 잇고 싶었죠.” 김씨는 201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신장을 기증했다. “최근에 열여덟 살이 된 큰아들이 ‘부모님이 자랑스럽다’며 ‘나도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너무 기뻤죠.”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6-09-0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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