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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 선생 서거 100주기로 다시보는 국경일 개천절 뿌리

나철 선생 서거 100주기로 다시보는 국경일 개천절 뿌리

입력 2016-10-03 09:59
업데이트 2016-10-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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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이끈 ‘대종교’가 시작…일제탄압에도 행사 이어가

3·1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로 꼽히는 10월 3일 개천절은 단군왕검이 우리 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리는 날이다.

고조선의 건국을 기리는 날인 만큼 기원이 오래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과 관련이 깊다.

개천절을 이름 짓고 경축하기 시작한 것이 일제 강점기때 독립운동의 총본산 역할을 했던 대종교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린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 선생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활발히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1863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1904년 유신회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해 구국운동을 시작했다.

을사늑약 체결 직전인 1905년에는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친선동맹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했다. 1907년에는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살해하려다 발각돼 유배형을 받았다가 고종의 특사로 사면됐다.

1900년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 대종교를 창시했고, 이때부터 개천절을 만들어 경축하기 시작했다.

고려 때까지 이어져 오던 신교(神敎) 즉 단군교를 재정비한 대종교는 단군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민족종교다.

일제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대종교를 탄압했지만 나철 선생은 종교의 벽을 넘어 민족을 하나로 뭉쳐 독립을 이끌기 위해 일제의 감시에도 개천절 행사를 이어갔다.

포교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하던 그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16년 음력 8월 15일 구월산 삼성사에서 일제의 폭정을 통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음력 8월 15일이 그의 서거 100주기였다.

나철 선생은 서거했지만, 그가 창시한 대종교는 이후 독립운동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됐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서간도(길림성 유아현)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도 대종교가 주도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세워져 1920년까지 2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들은 홍범도의 대한의용군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등에서 활약했다.

2대 교주인 김교헌은 1919년 2월 독립운동지도자 39인이 서명한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주지역 독립운동을 이끄는 등 항일 무장투쟁에 힘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음력 10월 3일에 축하식을 열었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했다.

그러나 현재는 형식적 기념일로 축소돼 다른 국가 기념일만큼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나철 선생의 100주기 역시 한민족 번영을 목적으로 결성된 모임인 ‘코리아 글로브’ 주최로 지난 추석 서울 종로구 단군성전에서 추모제가 열렸을 뿐, 다른 추모 행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석규 코리아 글로브 상임이사는 “일제의 강한 탄압에 맞서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했던 나철 선생과 대종교는 종교를 뛰어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가장 밑바닥의 믿음이었다”며 “후손들은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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