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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는 지상에, 액자는 바닥으로…지진공포가 일상을 바꿨다

주차는 지상에, 액자는 바닥으로…지진공포가 일상을 바꿨다

입력 2016-10-14 09:43
업데이트 2016-10-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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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진 한달간 471회…‘상상지진’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잦은 지진이 영남권 주민의 생활 양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경주에서 사상 최악의 규모 5.8 지진이 일어난 이후 한 달 동안 진동을 뚜렷이 느낄 만한 여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진이 일상화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공포는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주민들의 사고와 태도는 물론 일상의 풍경까지 변화시켰다.

벽에 걸린 액자는 방바닥에 내려놓고, 여차하면 즉시 피난할 수 있도록 지하주차장 대신 지상이나 도로변에 주차하고 있다. 비상 배낭을 싼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스트레스를 인정하되 지나친 공포감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지진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예행연습을 해보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 걸핏하면 ‘우르릉’ 진동…생활을 지진에 맞춘다

9월 12일 경주 지진 이후로 10월 12일 새벽 2.9 규모의 여진이 발생하기까지 한 달 동안 총 471회의 여진이 이어졌다.

규모 1.5∼2.9가 452회, 3.0∼3.9가 16회, 4.0∼4.9가 2회다. 실내에 있는 사람이 진동을 느낄 수 있다는 3.0 이상 규모만 18회에 달한다.

경주와 인근 대구, 울산, 부산의 주민들에게 지진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셈이다.

실제로 지진은 이 지역 생활상을 바꾸고 있다.

경주와 인접한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조모(34)씨는 이제 지하주차장에 주차하지 않는다.

지하 4층까지 있는 주차장은 공간도 넉넉하고 이용에 불편함도 없지만 비좁은 지상에 차를 댄다.

한 달 전 5.8 규모의 경주 지진 때 차를 몰고 대피하다가 한꺼번에 나가는 차들 사이에 지하주차장에 갇혀 발을 동동 굴렀던 경험 이후로 생각을 바꿨다.

조씨는 지진이 나면 즉시 도로로 나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에 차를 대기로 했다.

그는 “경주지진 때 주차장 출구로 몰리는 차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며 ‘지하에 갇히는 것 아닐까’하는 공포를 느낀 후로는 지하주차장 이용이 꺼려진다”면서 “매일 밤 주차장 대신 도로변에 주차되는 차량이 30∼40대는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사는 김모(36)씨는 아기 기저귀 사흘 치, 2ℓ짜리 생수 1개, 건빵, 비옷 등으로 꾸린 여행용 가방을 현관문 옆에 비치했다.

김씨 부인은 국민안전처가 보내는 재난문자가 수신되지 않자 휴대전화 교체도 고민하고 있다.

김씨는 “조만간 가방에 필수 물품을 더 추가할 계획이다”라면서 “아파트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어 피난이 쉽고, 집도 11층으로 초고층이 아니어서 계단으로 이동할 때 큰 부담이 없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말했다.

부산시 해운대구의 아파트 33층에 사는 최모(41)씨는 침대 주변에 걸려있던 액자를 모두 치웠다.

최씨는 “서예 작품을 좋아해서 액자에 작품을 많이 넣어 걸어두었는데, 지난번 지진 때 작품들이 떨어질 뻔했다”면서 “자고 있는데 액자가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치웠다”고 말했다.

◇ “문득 떠올리면 가슴이 쿵쾅”…만성화된 지진 트라우마

최악의 지진과 끊이지 않는 여진은 이 지역 주민의 심리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울산시 중구에 사는 강모(32·여)씨는 10일 오후 10시 59분, 12일 0시 29분에 각각 발생한 규모 3.3, 2.9의 여진을 모두 자던 중에 느꼈다.

잠에서 깨서는 놀란 가슴 때문에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9월 12일에도 5.1 지진이 일어난 지 약 1시간 후에 5.8의 강진을 경험한 기억 때문에 강씨는 한번 흔들림을 느끼면 ‘더 심한 것이 오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한참 시달린다.

강씨는 “예전에는 몰랐을 흔들림을 이제는 자면서도 느낄 정도로 몸이 지진에 민감해진 것 같다”면서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여진이 5.8 규모 지진 때 공포를 반복적으로 상기시켜 괴롭다”고 말했다.

울산시 남구에 사는 정모(38)씨도 비슷한 고충을 토로했다.

정씨는 “(지진을)생각하지 않고 있다가도 문득 ‘지금 지진이 오면 어쩌지’하는 생각을 하면 한동안 불안해서 마음이 불편하다”면서 “여진 자체야 별거 아니지만, ‘이렇게 잽을 날리다가 큰 거 한방이 오는 것 아닐까’하는 상상을 하면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호소했다.

지진에 대한 크고 잦은 공포는 마치 ‘상상임신’과 원리가 비슷한 ‘상상지진’ 증세를 낳기도 한다.

부산 사상구에 사는 이모(41·여)씨는 침대에만 누우면 진동이 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 일어난 적이 많다. 그러나 즉시 뉴스나 인터넷을 확인해도 지진이 났다는 말은 없었다. 혼자서 지진이 왔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씨는 이런 느낌을 없애려고 침대 매트리스 위에 돌매트를 올리고 그 위에서 잠을 잔다.

이씨는 “혼자 진동을 느끼는 것이 심리적 요인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증상이 좋아질까 하는 생각에 돌매트를 샀다”고 말했다.

◇ “구체적·현실적 대비로 막연한 공포 달래야”

지진 공포를 겪은 후 실제로 몸이 흔들림에 민감해진다거나 혹은 진동이 없는 데도 진동이라고 착각하는 사례는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의 하나인 ‘각성현상’에 해당한다.

외상(지진)과 관련된 자극에 민감해지면서 작은 반응에 크게 반응하게 되며, 일반적인 자극과 재난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고 공포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아예 지진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역설적으로 현재 상황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며, 그로 말미암아 불안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후에는 생존과 안전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그에 맞춰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지진 관련 정보를 지속해서 찾아보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시간을 정해두고 검증된 정보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박장호 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4일 “지진에 대한 불안감은 성별, 연령, 과거 외상경험, 재난 노출 시간이나 근접도 등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즐기는 취미나 운동, 편한 사람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 등이 도움이 되며, 그래도 불안감이 심하면 단기간 심리상담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초기 증상이 공포증이나 우울증 등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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