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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당직해도 5~6시간만 근무 인정…‘노예계약’ 해결책 없나

온종일 당직해도 5~6시간만 근무 인정…‘노예계약’ 해결책 없나

입력 2016-10-31 09:21
업데이트 2016-10-3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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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직 ‘장시간 근로, 저임금 허용’한 근로기준법 63조이 문제 전문가들 “휴게시간에도 근무지 가둬두는 부당 근로계약 관행 바꿔야”

온종일 학교를 지키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5∼6시간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현대판 노예’ 학교경비원의 불합리한 근로 형태가 거센 비판을 받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관계기관인 교육 당국도 근로 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비원과 같은 감시적 근로자는 연장·휴일 가산수당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현행법을 용역업체들이 교묘하게 악용해 극단적인 근무시간 쪼개기 계약이 횡행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감시적 근로자란 감시 업무를 주된 업무로 하고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근로자를 말한다. 학교경비원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경비근로자와 같은 이른바 ‘감시적’ 근로자들은 근로시간이나 휴게·휴일에 관한 규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반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주일 40시간, 1일은 8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합의하면 12시간(1주일) 추가연장 근무가 가능한 데 연장근로수당을 적용받아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휴일이나 야간근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3조(적용의 제외) 3항은 ‘감시 또는 단속적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를 일반 근로자의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으로 명시했다.

물론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자’여야만 한다는 기본 조건이 붇지만, 거꾸로 말하면 일정 기준을 채워 승인만 받은 사용주는 이 조항에 따라 온종일 대기 시켜도 적정한 휴게시간을 부여하면 장기간 일을 시켜도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다 보니 휴게시간 사이에 근무시간을 쪼개 넣어 결과적으로 온종일 학교를 지키지만 정작 근무시간은 5~6시간만 인정하는 부당한 ‘노예 계약’이 성행한다.

업체나 관계 당국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불합리한 쪼개기 계약과 휴게시간임에도 자유롭게 근무지를 벗어날 수 없는 ‘부당 계약’이라고 지적한다.

충북 모 중학교에서 24시간 근무를 하고도 이른바 ‘쪼개기 계약’으로 한달 급여가 채 100만원도 안 되는 열악한 근무 여건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난 70대 학교경비원 A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휴게시간을 1∼2시간씩 끼워 넣어 24시간 중 근무시간은 6시간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온종일 학교를 지켰음에도 A 씨에게 돌아간 몫은 100만원 남짓이었다.

사용자 측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 노동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휴게시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근무 강도도 높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인 연장·휴일 가산수당 등을 적용하면 사용주가 지불해야 할 임금이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 역시 근로기준법상 단속적 근로자와 같은 직종은 적용 제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 활동이 자유롭고 근로자와 사용자가 서로 간 합리적인 적정 기준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와는 조금 다르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선진국은 노조 활동을 통해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적정한 기준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나라 학교경비원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감시·단속 업무 종사 근로자들을 위한 업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근로계약에서 형식적으로 휴게시간으로 규정하더라도 ‘제재나 감시·감독 등에 의해 근무장소에서 강제로 대기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규정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단순하게 권고하는 수준이어서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지켜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느 게 노동계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을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란을 불식시키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공운수노조법률원 고관홍 공인노무사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명확하게 장소 제약을 두지 않는 휴게시간을 정해 실질적으로 쉴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근로기준법 상 근로시간이나 휴게·휴일 규정에서 경비원과 같은 감시 단속적 근로자들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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