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최씨 딸 졸업 초·중·고 모두 조사…특혜 없었는지 쟁점 마련해야”
정권의 비선실세 의혹으로 검찰에 구속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이목이 쏠리면서 허술한 초·중·고 학생선수의 출결 관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최순실 발(發) 충격은 표면적으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친분을 등에 업고 딸의 학교에 직간접적 압력을 행사한 최씨의 그릇된 행동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면에는 학교가 학생선수에게 정상적인 공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장려하기보다는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을 ‘지상 목표’로 여기는 뿌리깊은 엘리트체육 시스템의 폐해도 도사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정씨가 다닌 초·중·고교가 출석인정과 진학 등에서 부당한 특혜를 주지 않았는지 조사하고, 체육특기생들의 대회·훈련 참가와 학습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도록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 정씨 졸업 초·중학교까지 조사확대…출석인정 특혜·금품수수 여부 핵심
서울교육청은 최씨의 딸인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씨가 졸업한 초·중·고교 전부를 상대로 학교 측이 재학 중에 출결관리 등에서 특혜를 제공하지 않았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교육청은 최씨가 교사와 교장에게 돈봉투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확인된 청담고에 감사인력 9명을 투입했다. 1일과 4일에는 정씨가 졸업한 중학교와 초등학교까지 조사대상에 포함했다.
교육청 조사의 핵심은 최씨에게 금품을 받은 교사가 있는지와, 최씨의 압력에 못이겨 승마선수였던 정씨에게 출결관리와 진학 등 측면에서 학교 측이 부당한 특혜를 제공했는지 여부다.
청담고를 상대로 한 1차 조사에서는 최씨가 딸이 1학년과 3학년때 총 세 차례 교장과 체육 교사, 3학년 담임교사에게 돈 봉투를 전달하려다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조사에서는 금품수수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교육청은 고교에서 드러난 최씨의 촌지전달 시도가 여러 차례인 만큼 비슷한 일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특히 교육청은 최씨가 실제로 금품을 전달한 교사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관련 내용을 증언할 공익제보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교사나 교장·교감의 금품수수 정황이 확인되면 법리검토를 거쳐 최씨와 관련자 전부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정유라씨에게 학교가 대회 출전과 출결관리 등에서 부당한 특혜를 제공했는지도 쟁점이다.
교육청은 지난달 말 중간결과 발표에서 정씨가 고교 재학시 1∼3학년 공히 대회·훈련을 위한 결석을 출석으로 처리하기 위한 근거서류가 모두 구비돼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일부 증빙자료 누락이 확인돼 부실조사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학교체육업무매뉴얼에 따르면 체육특기생이 훈련참가와 대회출전 등을 위해 결석할 경우 증빙문서와 학업보완계획 등을 제출해야 한다.
정씨는 3학년때 대회에 출전하면서는 승마협회의 ‘시간할애요청’ 공문을 대부분 제출했지만, 1·2학년때는 공문을 제대로 내지 않았는데도 당시 교장이 정씨의 조퇴나 결석을 재량에 따라 출석으로 인정한 경우가 다수 확인됐다.
선화예술학교(중학교 과정) 3학년 때에도 대회 출전을 이유로 수업일수 205일 중 86일만 실제 출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고 교때 정씨는 교육부가 안내한 출전횟수 제한(승마의 경우 연 4회 이하)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여러 차례 대회에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선수는 대회참가신청서에 전국대회 참가횟수를 명시하고 학교장과 경기단체에서 확인도 받아야 하지만, 이런 과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체육업무매뉴얼은 이런 규정을 위반해 입상한 경우 입상자체를 무효처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학생선수가 정규수업 이수 의무조치를 위반할 시 학교는 체육특기학교 지정이 취소되고 체육특기자 배정과 전입학을 제한받게 된다.
교육청 감사에서 부적절한 처리가 확인되면 정씨가 졸업한 학교들의 체육특기생들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
◇ 특기생 출결관리 엄격해졌다지만 여전히 ‘느슨’…교육청 “학습권 보장 강화”
교육청의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씨가 다닌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학교와 교사도 피해자’라는 항변도 나온다.
실제로 최순실씨는 딸이 고교 2학년때 지나친 대회 출전을 지적하는 체육교사에게 찾아가 ‘너 어디가, 너 같은 건 교육부 장관에게 말해서 바꿔버릴 수 있다’는 등 폭언까지 했다.
하지만 관행에 따라 학생운동선수의 출결관리를 일반 학생보다 덜 엄격히 한 것을 ‘특혜’로 몰아가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체육특기생 관리 경험이 많은 서울의 한 체육교사는 “최순실씨 비난 여론이 거세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지금껏 드러난 것으로는 학교가 딱히 특혜를 줬다고 보기 어렵다”며 “체육특기생들을 일반 학생과 같은 기준으로 출결관리를 할 경우 특기생 학부모들의 반발도 심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중·고교 체육특기생들은 별다른 증빙자료나 승인절차 없이도 ‘자유롭게’ 결석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2009∼2010년쯤부터 엘리트체육 위주의 교육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특기생의 출결관리 규정이 대폭 정비됐다. 이 때문에 운동선수라 해도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됐고, 요즘에는 국가대표급 학생선수도 학교에 어느 정도 출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교가 ‘관행’을 이유로, 또는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거둬야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학부모 성화에 못 이겨 특기생의 출결관리를 다소 느슨하게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중·고교 교장들 사이에서는 ‘체육특기생을 받으면 여러 모로 피곤해진다’며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관행적으로 느슨하게 해온 체육특기생들의 출결관리를 규정에 맞게 한층 엄격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학생선수의 학습권보장 매뉴얼과 고3 수능 이후에 편법적인 출결처리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지침이 엄연히 있었지만, 청담고는 이런 규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교육청이 성역없이 조사해 부적절한 처리가 없었는지 명백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교육청은 정씨가 다닌 학교들의 학사관리 조사와 별도로 앞으로 중·고교 체육특기생들의 출결을 더욱 엄격히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교육청 윤오영 교육정책국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체육특기자의 학사관리와 대회 참여, 학습권 보장에 대한 관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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