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개 주인, 젖먹이 때부터 산짐승 퇴치용으로 맹훈련시켜
전북 고창경찰서는 산책 중인 부부를 물어 크게 다치게 한 혐의(중과실 치상)로 사냥개 주인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사진은 부부를 문 사냥개들.
고창경찰서 제공=연합뉴스
고창경찰서 제공=연합뉴스
산책 중인 40대 부부가 대형견 4마리에 물려 크게 다친 사건의 전말이 경찰 조사로 드러났다.
전북 고창경찰서는 개 주인 강모(56)씨를 전날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고창에서 농사를 짓는 강씨는 2015년 지인으로부터 대형 잡종견(믹스견) 한 마리를 얻었다.
마침 자신의 논과 밭을 헤집는 멧돼지가 골칫거리였던 강씨는 이 개에서 태어난 새끼 4마리를 사냥개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강씨는 근처 산을 돌며 강아지들에게 산짐승 잡는 훈련을 시켰다.
강씨의 특훈으로 강아지들은 성견이 되자 사나운 사냥개로 거듭났다.
개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한 덕에 강씨의 논과 밭이 헤집어지는 일도 줄었다.
강씨는 어른 몸집만한 개들을 데리고 종종 산책하러 다니곤 했다.
주위에선 ‘개가 너무 커서 무섭다’며 피했지만, 강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들과 함께 산책로를 돌았다.
그러다 끝내 사건이 터졌다.
지난 8일 오후 10시 20분께 고창읍 고인돌박물관 산책로에서 고모(46)·이모(45·여)씨 부부가 이 사냥개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고씨는 엉덩이 몇 군데에 큰 이빨 자국이 났고, 이씨는 오른팔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부부에게 맹렬히 달려든 개들은 목줄도 하지 않아 도저히 말릴 방법이 없었다.
사투 끝에 개를 뿌리친 남편 고씨는 아내를 끌고 가 팔을 물고 있는 다른 개를 위협해 물리쳤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목숨까지 위험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배회 중인 개 2마리를 포획했다. 달아난 나머지 개 2마리도 1시간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붙잡혔다.
갑작스러운 개들의 공격으로 팔과 다리 등 일곱 군데를 물린 아내 이씨는 부상 정도가 심해 광주의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부부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강씨는 “잠깐 신경을 못 썼는데 개들이 달려나갔다. 사람을 무는 것을 보고 달려가 개들을 말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씨 부부는 “개가 우리를 물고 있는데 주인은 도망갔다”며 “나중에 상황이 다 끝나고 나타나 개를 데리고 갔다”고 반박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도 강씨가 개를 말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부부의 진술을 뒷받침했다.
경찰은 당초 강씨에게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부부의 부상이 심하고 별다른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정황을 고려해 중과실 치상 혐의를 적용키로 했다.
과실치상은 50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는 비교적 가벼운 혐의지만, 중과실 치상은 5년 이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강씨는 뒤늦게 “예전에 1억원까지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했다”며 “부부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계속 개들을 말렸다고 했지만,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고 목격자와 부부 모두 이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며 “강씨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져 필요에 따라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받게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조만간 강씨를 다시 불러 개 처분 여부와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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