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원서 기름섞인 농업용수를 9개월째 생활용수로 사용

노인요양원서 기름섞인 농업용수를 9개월째 생활용수로 사용

김태이 기자
입력 2018-04-11 11:20
업데이트 2018-04-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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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탱크 안 시커먼 기름 범벅, 옴도 발생…시설담당자 “양심에 가책” 폭로

경남 양산에 있는 한 노인요양원이 가뭄으로 지하수가 줄자 9개월째 기름이 섞인 농업용수를 설거지와 목욕 등 생활용수로 사용 중인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런 사실은 해당 요양원에서 일하던 시설관리자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제보하면서 밝혀졌다.

양산시 S요양원에서 근무하던 A(57) 씨에 따르면 요양원 측이 지난해 7월부터 지하수가 부족하자 자구책으로 인근 농업용 저수지에 호스를 연결해 지금까지 사용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2016년 8월부터 최근까지 이곳에서 시설 전담 관리자로 일했다.

A 씨는 농업용수가 식수나 생활용수로 쓸 수 없는 물이지만 요양원 측이 일부는 식수로 쓰거나 설거지, 목욕 등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농업용수 사용 이후 요양원 어르신들이 자주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하기도 했고, 흰 플라스틱 식기가 누렇게 변했다고 밝혔다.

식기건조기도 곳곳에 기름이 끼면서 수차례 고장이 났고, 화장실과 하수관도 막혔다.

요양원 측은 3개월 후인 지난해 10월 물탱크 청소를 위해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물탱크 내부 물은 검은색으로 변했고 물을 빼자 탱크 벽면은 온통 시커먼 기름 범벅이었다.

물탱크 청소업체조차도 손을 댈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A 씨는 “뒤늦게 알게 됐는데 농업용 저수지 바로 옆에 울산 공업용수가 지나가는 관로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기름 성분은 공업용수 쪽에서 흘러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요양원 대표에게 시설개선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지하수 보수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특히 이 요양원에서는 지난해 5월에 이어 10월엔 요양원 한 건물에서 전염성이 강한 피부질환인 옴이 집단으로 발생, 한 달간 해당 건물 어르신들을 격리 조치했다.

요양원 측은 옴이 발생한 사실을 시나 보건소 측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더 이상 양심에 찔려 요양원 일을 할 수 없었다”며 “그만두기 3주 전에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요양원 호스를 연결해 놓고 나왔다”고 고백했다.

기자가 실제 요양원 현장을 확인한 결과, 지하 물탱크는 속을 확인하기 조차 어려울 만큼 검고 탱크 벽면엔 시커먼 기름이 달라붙어 있었다.

요양원 물탱크로 연결된 호스는 산 아래 400m 떨어진 농업용 저수지 쪽으로 길게 연결돼 있었다.

이에 대해 요양원 측은 대부분 잘못을 인정했다.

요양원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워낙 가뭄이 심해 갑자기 지하수가 급격히 줄어 식수를 제외한 생활용수를 농업용수로 쓰고 있다”며 “지하수 공사를 하려고 했지만, 물량이 여전히 부족해 일정상 늦어졌다”고 변명했다.

그는 “설거지, 목욕 등 생활용수로 이 물을 쓴 것은 맞지만, 식수는 지하수를 사용했다”며 “옴 발생은 이 물 때문이 아니라 외부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말 죄송하고 이른 시일 내에 막힌 배수관, 물탱크 청소를 동시에 하면서 먹는 물과 생활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지하수 공사에 들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요양원 측의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장기간 계속됐지만 양산시는 그동안 전혀 점검이나 지도·감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 관계자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이 소홀했던 점이 있다”며 “해당 시설에 대한 현장을 확인 후 필요한 지도와 후속 조처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이 요양원에는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장기요양등급 판정(1~2등급)을 받은 노인 200명이 입소해 있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으면 1인당 매월 국비로 120만~130여만원이 지원된다.

2004년 4월 개원한 이 요양원은 2만5천평 부지에 건물 5채로 이뤄졌고, 직원 109명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이 요양원은 사회복지법인으로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며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보조금과 후원금을 지원받고 감사도 받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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