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방지와 조리돌림 사이… 범인 신상공개 ‘고무줄 잣대’

범죄 방지와 조리돌림 사이… 범인 신상공개 ‘고무줄 잣대’

고혜지 기자
고혜지 기자
입력 2019-06-06 23:00
업데이트 2019-06-07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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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펜션 살인 혐의 고유정 신상 공개

찬성측 “피해자 인권 더 중요” “알권리”
반대측 “판결 전까지 무죄 추정 적용”
부실수사 국민분노 피하려 악용 지적도
“공개 통한 예방효과 아직 입증 안 돼”
“기준 구체화 하거나 위원회 통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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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이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 조사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머리를 풀고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이동해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앞서 제주지방경찰청은 5일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범죄 수법이 잔인하고 결과가 중대하다며 고유정의 실명과 얼굴,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이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 조사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머리를 풀고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이동해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앞서 제주지방경찰청은 5일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범죄 수법이 잔인하고 결과가 중대하다며 고유정의 실명과 얼굴,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강력범 신상공개의 기준과 효과를 두고 논란이 다시 뜨거워졌다.

6일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올 들어 3번째 강력범 신상공개에 해당한다. 앞서 경찰은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김다운(34)과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42)의 신상을 공개했다.

현행법에는 신상공개 기준으로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범죄 사건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등 4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영향력, 물적 증거, 범죄의 잔혹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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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경찰 3명과 외부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위원회(위원회)의 구성이나 여론의 동향에 따라 공개 여부가 자의적으로 결정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부실한 수사와 초동 대처 미흡으로 경찰이 비판을 받게 되면 국민의 분노를 피의자에게 돌리기 위해 신상공개 카드를 악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이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 안인득의 위협적인 행동을 계속 신고했는데도 경찰이 이를 무시해 결국 참극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그러자 경찰은 사건 하루 만에 안인득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강신업 변호사는 “지방경찰청마다 신상공개 심의위원회가 열리지만,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비슷한 사건도 다르게 판단할 때가 있다”면서 “기준을 구체화하거나 위원회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신상공개로 인해 제도 자체에 대한 찬반 여론도 갈린다. 피의자보다 피해자 인권이 중요하고, 국민의 알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게 찬성 측 논리다.

직장인 안모(28)씨는 “신상공개 반대론자들은 본인의 가족이 피해를 당해도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해주자’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신상공개의 근거로 범죄 예방 효과를 제시한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죄가 있다면 신상공개가 도움되겠지만 공개를 통한 범죄예방 효과는 아직 명확히 입증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 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모(28)씨는 “공개의 기준이나 효과를 알 수 없는데 현대판 ‘조리돌림’을 위한 조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2019-06-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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