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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생] 인간이 떠난 산불 현장…우리에 갇힌 동물들 피할 곳 없나요

[취중생] 인간이 떠난 산불 현장…우리에 갇힌 동물들 피할 곳 없나요

손지민 기자
입력 2022-03-12 09:30
업데이트 2022-03-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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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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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가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서 화상 입은 개를 구조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가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서 화상 입은 개를 구조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지난주 산불이 크게 번진 경북 울진. 여든이 넘은 한 노부부는 새벽에 잠에서 깨 급하게 대피하느라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개 ‘울진’이의 목줄을 풀어주지 못 하고 나왔습니다. 화재를 진압하면서 줄이 끊어진 울진이가 다 타버린 집구석에 홀로 있는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노부부의 자녀는 ‘동물권행동 카라’에게 울진이의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노부부의 집을 찾아간 카라의 활동가들은 모두 타버린 집 옆 대문 구석에서 이미 죽어 있는 울진이를 발견했습니다.

울진이는 하얀 털을 가진 백구였지만 울진이의 마지막 모습은 전신의 털이 다 눌어 누렇고 마른 몸이 전부였습니다. 목줄 아래 불길이 미치지 못한 곳에 남아 있는 때탄 하얀 털만이 생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가까스로 목줄이 끊어진 울진이는 왜 도망가지 않고 노부부의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을까요. 카라는 “무서워 숨은 건지, 노부부를 찾고 싶었던 건지 울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나 알 길이 영영 사라져 버렸다”고 사연을 전했습니다.

산불 현장 동물 30마리 구조…개농장은 물·전기 끊겨
경북 울진, 강원 삼척·동해·강릉 등 대형 산불이 동해안을 덮친 지 9일째입니다.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산불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의 문제가 불거집니다. 주인이 목줄을 풀어주지 않아 그대로 불에 타 죽거나, 화재를 피해 도망쳤더라도 가족처럼 소중한 반려동물과 주인이 생이별을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유기동물 보호소나 불법 개농장같은 경우 수많은 동물들이 한꺼번에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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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서 동물들을 구조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서 동물들을 구조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동물보호단체들은 산불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앞다투어 동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카라는 12일 현재까지 울진 산불 현장에서 구조한 동물이 총 30마리라고 밝혔습니다. 힘을 다해 구조했지만 사망한 동물도 있습니다. 카라에 따르면 다섯 살된 소 ‘소원’이는 산불을 피하기 위해 축사에서 탈출하려다 뒷다리가 부러졌고 화상도 입었습니다. 카라는 소원이를 구조했지만 이틀만에 사망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울진의 개농장으로 향했습니다. 산불이 번지고, 물과 전기가 모두 끊긴 가운데 철창에 갇혀 나올 수 없는 개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케어는 개농장에서 화상으로 고통 받고 있던 개들, 굶주림에 울부짖는 개들, 이미 새까맣게 타서 죽어 있는 개들을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케어는 이들을 구조해 화상이 심각한 8마리를 서울로 이송해 치료 중입니다.

동물보호단체 위액트도 울진에서 동물 총 30마리를 구조했다고 지난 10일 밝혔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산불 화재로 피해를 입은 동물들에 대해 최대 200만원 한도 내에서 긴급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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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반려동물 늘어나지만 재난 대응책은 미비
2017년 포항 지진, 2019년 고성 산불, 올해 동해안 산불까지 대규모 재해·재난이 반복되고 있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대응책은 부족합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적절한 매뉴얼을 수립해야 합니다.

동물권 단체들은 반려동물 대피시설을 비롯해 기본적인 행동 지침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에는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역 외부에 거주하는 친척과 친구에게 반려동물이 머물 수 있는지 부탁하기’, ‘수의사나 조련사가 대피소를 제공하는지 알아보기’ 등 동물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자체적으로 확보하라는 수준의 지침만 제공할 뿐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민경 카라 정책행동팀장은 “해외에는 재난 상황 발생시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과 방안이 잘 마련돼 있어서 동물과 같이 들어갈 수 있는 대피소와 그렇지 않은 대피소가 분리돼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짚었습니다.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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