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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청년예술가가 동네 60대 미용사를 찾아간 이유

두 청년예술가가 동네 60대 미용사를 찾아간 이유

입력 2022-08-15 20:02
업데이트 2022-08-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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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 미용사 삶 기록한 ‘헤어걸즈’ 프로젝트

헤어걸즈 타로카드로 점을 보는 모습
헤어걸즈 타로카드로 점을 보는 모습 가족과 함께 사는 기자가 독립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뽑은 5장의 타로카드. ‘독립 후 모습’을 떠올리며 뽑은 마지막 카드(오른쪽 하단)의 이름은 ‘부모 없는 아이’다.
헤어걸즈는 “큰 미용실을 운영했던 사장님이 주변 부탁으로 갈곳 없는 아이를 돌보면서 삶의 전환점이 맞았다”는 사연을 알려준 뒤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카드 속 여성에게서 담담한 인상을 받았다면 이미 독립 준비를 마친 게 아닐까”라는 점괘를 내놨다.
20대 청년 두 명이 엄마뻘인 60대 동네 미용사의 애환이 담긴 삶을 기록하고 이를 타로카드로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엄마들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는 그들에게도 젊었던 과거가 있었다는 데 주목해 세대 간 소통에 나선 것이다.

시각예술가 김소희(27)씨와 최새미(26)씨가 중년 여성 미용사의 구술사를 기록하는 ‘헤어걸즈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20년 6월 무렵이다. 서울 목동의 오래된 동네 미용실에 붙은 낡은 ‘헤어포스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김씨는 15일 “포스터 속 풍성한 웨이브 머리의 젊은 모델은 그 미용실에 뽀글 파마를 하러 가는 중년 여성과도, 현재 젊은 여성인 나와도 동떨어져 보였다”면서 “‘저 모델도 지금은 중년이 됐겠네’ 그렇다면 ‘나이든 미용사에게도 젊은 과거가 있었겠구나’까지 생각이 미치니 절로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헤어걸즈 멤버
헤어걸즈 멤버 ‘헤어걸즈’ 멤버 김소희(27·왼쪽)씨와 최새미(26)씨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중년 미용사의 삶을 기록한 두 사람은 오는 9월까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프로젝트 후원금을 모금한다.
20대 예술가와 60대 미용사는 서로가 낯설었다. 쭈뼛대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 손님이 아닌데’라는 갸우뚱한 시선이 돌아왔다. 머리하는 손님 뒤에선 중년 여성이 계모임을 하고 화장품을 사고팔거나 식재료 공동구매를 의논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최씨는 “처음엔 간식을 사 가다 어느 순간 손님으로 가는 게 제일 편한 방법이라는 걸 알게 돼 머리를 자르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청년은 60대 미용사들의 인생사에 빠져들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신촌 대학가에서 일했다는 A씨는 ‘지랄탄’(다연발 최루탄)이 쏟아지면 일대 상가가 재빨리 셔터를 닫고 대학생들을 숨겨주었다고 했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난 B씨는 5성급 호텔을 거쳐 명동의 큰 미용실에서 ‘잘 나가는 미용사’였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남편 사업 때문에 충북 단양으로 옮기고도 화려한 꽃장식을 덧붙인 결혼식 올림머리로 다시 전성기를 맞아 지역 미인대회 우승자 머리도 여럿 만졌다고 했다.
헤어걸즈 타로 점 복채
헤어걸즈 타로 점 복채 헤어걸즈 타로카드로 점을 보면 뽑은 카드 수만큼 머리카락을 잘라 복채로 낸다.
미용사들은 ‘미용실 괴담’을 묻는 질문에 “밤에 오는 남자 손님”이라는 뜻밖의 답을 내놓기도 했다. 여성 혼자 일하는 미용실이 강도·성범죄 타깃이 되면서 미용협회가 미용실을 통유리로 만들라고 권고했을 정도다.

김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여성이 주고객인 서점에서 일할 때 술에 취한 남성 손님이 찾아와 두려움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렸다”면서 “나이 차를 뛰어넘어 공감하게 된 순간”이라고 했다.

헤어걸즈는 이런 사연을 담아 제작한 타로카드 51장을 사용해 지난해 12월 동네미용실에서 타로 점을 보는 행사를 진행했다. 독립·진로·연애·이직 고민을 털어놓은 청년들은 중년 미용사들의 삶에 각자 해석을 덧붙여 답을 찾아냈다.

두 사람은 가장 마음에 드는 카드로 ‘미용사와 손님의 나이는 비례한다’는 제목의 카드를 꼽았다. 이 카드 해설서에는 “당신이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그들은 당신이 찾고 있던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어느 미용사가 우리에게 ‘나이든 손님은 나이든 미용사만 찾고 젊은 손님은 젊은 미용사만 찾는다’는 말을 했어요. 단절된 공간에 사는 우리는 서로를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진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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