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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식량’ 드실래요?

‘실험실 식량’ 드실래요?

입력 2013-01-08 00:00
업데이트 201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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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단계에 있는 ‘미래의 음식’… 넘어야 할 장벽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공대의 한 연구실. 커다란 방 가득히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다. 시험관 속에는 스테이크용 고기들이 들어 있고 한쪽에서는 뜨개질을 통해 소고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초록색과 분홍색 줄무늬가 있는 초밥용 생선 조각은 유전적으로 만들어진 ‘채식 생선 나무’에서 얻어진다. 와인은 프로그램을 통해 몬테풀치아노부터 시라까지 품종에 따라 원하는 대로 뽑아 먹을 수 있다. 어린이용 음식도 있다.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진 콜라와 ‘마법의 미트볼’도 있다. 이 모든 음식은 자연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줄기세포에서 키워졌고 오메가3와 비타민도 생산 단계부터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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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들은 당장 먹을 수는 없다. 모두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식당 밖의 플라스틱 표본처럼 ‘미래의 음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진짜다. 연구실 책임자인 코에트 반 무스바르트 교수는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실험실 식량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무스바르트는 바이오공학자, 마케팅 전문가, 철학자 등과 함께 식량 생산을 준비하는 ‘넥스트네이처’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실험실 식량의 미래는 ‘사람들의 거부감’에 달려 있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 고기를 배양해 먹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온다. 특히 음식은 기본적으로 고정관념의 장벽이 높다. 음식은 ‘자연스럽고 정직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무스바르트는 “과거 말을 이용한 교통수단이 절대적인 것으로 각광받았지만 이제 우리는 자동차를 갖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다만 음식 분야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고 가장 성공을 거둔 방법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기업들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직까지 어떤 기업도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물이 실험실을 벗어나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져야 하고 기업의 연구 개발 투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무스바르트의 연구실에 기업의 투자금은 전혀 없다. 모두 정부 예산으로 이뤄지고 있다.

기업들은 ‘인공’ ‘실험실’ 등의 말을 사용하는 연구에 이름이 언급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무스바르트는 “유럽 최대의 식량 회사 관계자가 연구와 관련된 어떤 발표에도 회사 이름이 포함되지 않도록 당부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거부감은 세계 최대의 유전자변형작물(GMO) 기업인 몬산토 때문이다. 몬산토는 첫 유전자변형작물로 ‘제초제 저항성 작물’을 내놨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인도 정부가 별다른 대중 캠페인 없이 작물 재배와 유통을 허용하면서 유전자변형작물은 ‘음모론의 온상’이 됐고 어떤 과학적 설명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줬다. 그 결과 수많은 과학자들은 유전자변형작물을 구별해 내거나 유통을 막는 기술에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기도 하다. 몬산토는 전 세계에서 떼돈을 긁어모으지만 ‘우리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과학철학자나 윤리학자들은 실험실 식량이 유전자변형작물과는 다른 길을 갈 것으로 전망한다. 코 반데 윌 바헤닝언대 교수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기 위해 수백만 마리의 돼지를 공장에서 죽이는 것과 실험실에서 키운 윤리적인 고기 중 어느 것을 먹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했다. 환경적인 이득도 있다. 같은 양의 고기를 생산한다고 할 때 배양육은 축산업에 비해 1%의 땅과 2%의 물만 있으면 되고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도 10%에 불과하다. 배양육 분야의 선두 주자인 마크 포스트 박사는 “고기를 먹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는 채식주의자가 허머(초대형 SUV)를 타는 것이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양육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는 것을 즐긴다. 적은 돈으로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자연적이고 건강한 음식을 원한다. 동시에 충족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음식을 바라지만 역설적으로 이전 세대의 자연스러운 음식을 그리워한다. 이를 식품업계에서는 ‘식품 산업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경향이 앞으로 25년 동안에 급격히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식량 공급은 변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와 값싼 화석연료의 고갈로 인해 식량 가격은 절대로 2000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특히 세계 3대 작물인 벼, 밀, 옥수수는 기온 변화에 민감하다. 가장 먼저 옥수수가 사라진다. 옥수수는 30도가 넘으면 살 수 없다. 미래학자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식량을 공급받고 먹을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험실 식량이 중요한 이유다.

식량 증산이나 생산 방식의 혁명은 당면 과제다. 유엔식량기구의 전망에 따르면 2050년 인류는 지금보다 40% 이상 많은 식량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식량이 ‘아마겟돈’(최후의 전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가디언은 “미래의 식량인 실험실 식량이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게 되면 인류 대부분은 선택의 여지 없이 그것을 먹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2013-01-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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