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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귀신고래의 모성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귀신고래의 모성

입력 2012-07-16 00:00
업데이트 201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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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근한 고래를 들라면 모르긴 해도 대부분 동해나 제주 연안의 돌고래를 꼽겠지요. 사람을 겁내지 않고 다가와 군무를 연출하며 유영하는 모습에 친근한 경탄을 쏟아낼 만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고래는 귀신고래랍니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물고기 형상 중에는 이 귀신고래도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을 만큼요.

우리가 이 귀신고래에게 유달리 친근감을 느꼈던 것은 모성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고래는 물 속에서 살지만 알 대신 태생으로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입니다. 예전에 그 귀신고래가 가끔 동해안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것도 먼 바다가 아니라 사람들 눈에 띌 만큼 가까운 해안으로 올라와 20∼30t에 이르는 거구를 뒤척이며 머물다 가곤 했는데, 거기까지 와서 그가 하는 일은 연안에 많은 미역을 실컷 뜯어먹는 거였답니다. 진짜로 고래가 미역을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귀신고래가 보이면 “저놈, 새끼 났나부네. 젖통 불릴라고 미역 뜯어먹으러 왔잖아.”라며 경이로워들 했지요.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새끼 수유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연안까지 다가와 미역을 뜯어먹고 간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포경선 작살잡이도 이런 귀신고래는 겨누지 않았답니다.

세상에서 오직 우리나라만 출산 후 미역국을 먹는데, 그 습성을 실은 고래로부터 배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의료체계가 없었던 옛날에는 출산 때 피도 많이 흘렸고, 고통도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무엇으로든 보상이 필요했을 겁니다. 세상에 애 낳는 일처럼 숭고하고 힘든 일이 없었으니, 애 낳은 산모에게 가장 정갈하고 가장 이롭고 가장 좋은 것을 먹게 했을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귀신고래가 그러듯 미역으로 국을 끓여 먹었다는 게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고래에게서 근원적인 모성의 문화를 배웠다는 건데, 그래서 사람의 일이 위대하고 거룩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래는 사람에게서 못 배워도 사람은 고래에게서도 배우니까요.

jeshim@seoul.co.kr



2012-07-1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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