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日기업, 강제징용 피해자에 배상” 첫 판결

법원 “日기업, 강제징용 피해자에 배상” 첫 판결

입력 2013-07-10 00:00
업데이트 2013-07-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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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제철, 1인당 1억원 지급하라”

1940년대 일본에 강제 징용돼 고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당시 구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05년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8년 만에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게 됐다. 일부 피해자가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내 2003년 패소 판결이 확정된 것까지 감안하면 16년 만의 승소 판결이다.

이번 판결로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돼 고난을 겪은 피해자들이 잇따라 추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고법 민사19부(윤성근 부장판사)는 10일 여운택(90)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침략 전쟁은 국제질서와 대한민국 헌법뿐 아니라 현재 일본 헌법에도 반하는 행위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특히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과의 동일성을 부정하거나 한일청구권협정 등을 내세워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핵심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어 “행위 불법성의 정도와 그 고의성, 피해 정도, 50년이 넘는 기간 책임을 부정한 태도 등과 함께 국민소득 수준이나 통화가치가 변화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고 여씨는 판결 선고 직후 “18살에 일본에 가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나처럼 원한 맺힌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이나 더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하고 성원해 준 여러분께 백 번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고를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 김미경 변호사는 “역사적인 판결이다. 피고 신일본제철이 배상을 임의로 집행해주길 바란다. 강제집행 절차는 나중에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위철환 협회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일본제철 등 가해자가 즉시 피해자들에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실질적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씨 등 4명은 1941~1943년 구 일본제철의 모집 담당관이 충분한 식사와 임금, 기술 습득, 귀국 후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보장한다며 회유해 일본에 갔으나 오사카 등지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며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소송을 냈다.

앞서 원고 4명 가운데 여씨와 신천수(87)씨는 1997년 12월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임금지급과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기했으나 패소했고, 이 판결은 2003년 10월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이에 우리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일본 판결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효력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적 없는 원고 이춘식(89)씨와 김규수(84)씨에 대해서도 “구 일본제철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만, 구 일본제철은 신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채무를 승계했다고도 볼 수 없다”며 같은 결론을 냈다.

반면 대법원은 작년 5월 “일본 판결의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구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의 법적 동일성을 부인한 원심의 잘못을 지적하고, 1965년 6월 한일 양국이 체결한 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병목(90)씨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도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환송했다. 부산고법 민사5부(박종훈 부장판사)는 오는 30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우리 법원에 이와 비슷한 소송을 여러 건 제기한 상태다.

지난 2월 피해자 13명과 유족 18명이 군수업체 후지코시를 상대로, 3월 피해자 8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각각 소송을 냈다. 지난 1일에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같은 법원에 접수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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