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17년 국가대표 마지막 승부차기 이운재 골키퍼

17년 국가대표 마지막 승부차기 이운재 골키퍼

입력 2010-08-07 00:00
업데이트 2010-08-07 00:2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지도자로 또 다른 승부차기 도전”

이운재(37·수원)는 승부차기에 강하다. K-리그 개인통산 12회의 승부차기 승부에서 11승 1패로 91.7%의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4강신화’도 이운재가 8강전 상대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슈팅을 막아냈기에 가능했다.

이미지 확대
이운재 연합뉴스
이운재
연합뉴스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도 이운재의 승부차기 방어력을 믿었기에 부진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를 남아공월드컵 본선까지 데리고 갔다. 그리고 우루과이와의 16강전. 1-2로 끌려가던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끼고 아꼈던 교체카드는 이운재, 바로 그였다. 한국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승부차기의 달인’ 이운재가 6일 ‘대표팀 은퇴’라는 승부차기를 날렸다. 처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지 17년 만이다.

이운재는 21세이던 1994년 미국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 0-3으로 끌려가던 후반 교체출장했다. 독일의 파상적인 공세를 잘 막았지만 팀은 2-3으로 졌다. 1998년 프랑스대회에는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2년 한·일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독일과의 4강전까지 모두 주전으로 나와 6경기에서 3골만을 내주는 신들린 방어력을 과시했다. “인생의 절반을 축구, 그리고 축구인생의 절반을 대표팀과 함께했다.”는 그는 “역시 한·일월드컵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4강 주역, 그런 것보다는 당시 조별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주전으로 선택받은 게 너무나 기뻤다.”고 말했다. 주전의 기회를 잡은 이운재는 대표 인생 ‘첫 번째 승부차기’를 멋지게 성공시켰던 셈이다.

늘 영광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07년 7월 아시안컵 본선 기간에 술을 마신 사실이 드러나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축구인생의 큰 오점으로 남을 만한 ‘실축’이었다.

하지만 이운재는 시련을 극복했다. 그는 “그 뒤로 실망한 팬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뛰었고, 다행히 2008년 소속팀(수원)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한다.”면서 “후배들은 나처럼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슈퍼세이브(선방)’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들을 꼽았다. 이운재는 “2002년보다 2010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의 경기, 그리고 정대세의 골이 무효가 됐던 북한전이 생각난다.”면서 “그건 아마도 마지막 열정을 펼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향후 진로는 아직 확실치 않다. 이운재는 “일단은 공부를 더 해야할 것이다. 일단 제자리에서 차분히 필요한 공부를 한다면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며 지도자로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2010-08-07 12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