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으로 점철된 산악인 박영석 인생

도전으로 점철된 산악인 박영석 인생

입력 2011-10-30 00:00
업데이트 2011-10-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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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끝내 실종된 박영석(48) 대장의 인생은 처음부터 도전의 행진이었다.

박 대장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갖고 어려서부터 탐험 활동에 몸을 던졌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온 도전 정신은 자서전과 정부 기구에 제출한 자기소개서, 최근 산악계 대선배에게 올린 기고문 등에서 잘 드러난다.

<박영석 대장 산악 등정 기록>















































































































































년도 대상국 비고
1993네팔에베레스트(8,848m)한국최초 무산소 등정

(아시아 최고봉)
1994미국맥킨리(6,194m)북아메리카 최고봉
1995탄자니아킬리만자로(5,985m)아프리카 최고봉
1993~

2001
파키스탄K2(8,611m) 등 14개

좌 완등
최단시간(8년2개월)

히말라야 14개좌 완등
2001호주코시어스코(2,230m) 오스트레일리아 최고봉
2002아르헨티나아콩카과 (6,959m)남아메리카 최고봉
2002인도네시아칼스텐츠 (4,844m)남아시아 최고봉
2002남극빈슨 메시프(5,140m)남극대륙 최고봉
2004남극남극점도달남극점 정복(최단기간 무보급)
2005북극북극점도달북극점 정복(그랜드슬램 달성)
2006네팔에베레스트(8,848m)단일팀 최초 횡단등반 성공
2009네팔에베레스트(8,848m)코리안 신루트 등정
2011네팔안나푸르나(8,091m)코리안 신루트 개척 중 실종


◇설악산에서 잔뼈가 굵으며 = 박 대장은 친구가 강원도 설악산에 살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했다고 했다.

친구의 집이 설악산에서 산나물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우연히 대청봉에 올랐다가 산에 빠져 방학 때마다 설악산을 올랐다고 설명했다.

박 대장이 산악인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0년 동국대 마나술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하는 장면을 지켜본 것이다.

등정에 성공한 동국대 원정대가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것을 보고 “야, 저거다. 나도 멋진 산악인이 돼보자”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박 대장은 이후 동국대 체육학과에 진학해 바로 산악부에 가입하고서 산악인으로 본격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관을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고,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한계 넘으려고 자신에게 도전 = 박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매년 한 두 봉씩 오르다가 1996년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선언을 했다.

일년 동안 8,000m급 5개 봉을 연속으로 등정하겠다는 것.

박 대장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5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선언했는데 놀랍게도 선언은 이뤄지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계로 여겨지는 일을 해내고 나니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완등하는 거사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박 대장은 다짐대로 2001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고 2005년까지는 3극점 답사와 7대륙 최고봉 완등까지 성취 일기를 써내려 갔다.

스스로 다그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행군한 결과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불가능하리라고 여겨지던 ‘탐험 그랜드슬램’이 완성된 것이다.

◇북극에서 지옥을 보다 =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랜드슬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룬 박 대장은 자신의 도전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박 대장은 1994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등반하다가 태어나서 가장 크게 오랫동안 목을 놓아 울고 말았다고 밝혔다.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순간 속으로 ‘제발’하고 빌었을 때 몸을 묶어 놓은 로프 덕분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박 대장은 “엉엉 운 게 30분 이상은 됐을 것”이라며 “울다가 움직이려는데 공포 때문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고 털어놓았다.

1995년에는 에베레스트에서 눈사태로 파묻혔다가 살아났고, 1997년 다울라기리에서는 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지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박 대장은 지옥이 있다면 북극일 것이라고 치를 떨었다.

매우 춥고 배가 고프며 바닷물에 빠지면 윗니와 아랫니가 딱딱 부딪치면서 미이라처럼 굳어버린다고 했다.

박 대장은 “북극점에 두 번째 도전할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하면 다시 와야 하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극점에 밟는 순간에 다시는 안 와도 된다는 안도감에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2월 한 차례 북극점 도달에 실패했다가 2005년 5월 두 번째 도전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가장 큰 영예는 8,000m 신루트” = 박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 과정에서 한 차례 오른 안나푸르나를 다른 방식으로 오르려다 실종되고 말았다.

이번 등반은 정상에 오르는 결과를 중시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에서 벗어나 험한 길을 골라 산을 오르는 과정에 무게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지향하는 방식이었다.

박 대장은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신루트로 오르는 데 성공해 ‘코리안 루트’를 개척했다.

이번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은 또 다른 ‘코리안 루트’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김영도 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이자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장의 미수(米壽) 기념문집에 최근 기고한 글에서 소신을 털어놓았다.

”네팔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했다. 지금 나는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 등반대가 한창 벽에 붙어 있을 때 김영도 대선배님은 88세 생신을 맞게 될 것이다.”

박 대장은 기고문에서 “산악인에게 히말라야 8,000m 신루트라는 것은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그랜드슬램을 이뤘는데 또 도전하는가’라고 질문하지만 나는 대표적인 것들만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3극점 같은 곳 외에도 자연과 상대할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탐험가에게 정년은 없고 나는 내 나이에 맞는 탐험과 등반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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