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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의 꿈’ 다가갈수록, 학교는 왜 더 멀어지죠?

‘메달의 꿈’ 다가갈수록, 학교는 왜 더 멀어지죠?

장형우 기자
장형우, 박재홍 기자
입력 2022-03-10 20:18
업데이트 2022-03-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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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으로 내몰리는 ‘학생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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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유망주 A군(14)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학생선수다. 중학교 2학년인 A군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오전 8시까지 학교에 가서 6교시(오후 3시)까지 모든 수업을 다 듣는다. 방과 후 친구들이 학원 갈 시간에 운동한다. 주말과 휴일에도 운동하거나 시합에 나간다. 방학 때도 운동에 전념하면서 국제탁구연맹(ITTF) 주최로 해외에서 열리는 주니어 대회에 출전한다. ITTF 주관 대회에 나가지 않으면 세계 랭킹이 없고, 그렇게 되면 탁구선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운동도 학업도 성적 내라는데…

이렇게 숨 가쁘게 살아가는 A군의 꿈은 2년 뒤 2024 파리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것이다. A군이 꿈을 이룬다면 17세에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했던 ‘탁구 신동’ 신유빈(18·대한항공)의 최연소 올림픽 출전 기록을 깨게 된다. 그런데 지금 A군의 고민은 고등학교 진학 여부다. 현행 규정으로는 학생으로도 선수로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군처럼 학생선수가 학교 밖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건 교육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학업·운동 병행 정책’ 탓이 크다. 교육부는 지난 3일 대입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현행 30% 안팎인 학생부 최저 반영비율을 40% 이상으로 높이거나 최저 학력 기준을 적용하고, 지난해 초등 10일, 중학 15일, 고교 30일이었던 학생선수 출석인정 결석 허용일수를 올해 각각 5, 12, 25일로 줄인 ‘2022년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야구나 축구, 농구처럼 대학 선발 인원과 중·고교 팀이 많고, 주말리그가 자리를 잡은 종목은 이 계획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체조나 탁구, 골프 등과 같이 주말리그는커녕 광역지방자치단체에도 학교 운동부가 1~2개 있을까 말까 한 종목의 학생선수들에겐 고교 진학을 앞두고 실존적 선택을 강요받는 문제가 된다.

높아진 학생부 반영 비율에 따라 대입을 위해선 학업 성적도 챙겨야 하고, 대회에 참가해 운동 성적도 내야 한다. 그런데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국내 청소년 대회가 적은 비인기 종목에선 국제 대회라도 나가야 하는데, 출석인정 결석 허용일수 25일로는 훈련뿐 아니라 1개의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어렵다. 운동도,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대학 진학이 어려우니 애초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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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학 포기 후 불확실한 미래도

A군 아버지는 10일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높아서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어갈 실력이 되면 고교 진학을 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의무교육만 마친 아이에게 너무 큰 인생의 결정을 하도록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신유빈 역시 지난해 2월 수원 청명중학교 졸업과 함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대한항공에 입단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보다 실업팀에서 운동에 전념하는 게 미래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A군이나 신유빈처럼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다른 학생선수들은 학교를 포기할 경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다른 진로를 찾기엔 이미 늦는 경우가 허다하다.

● 고교 골퍼 31% 일반고 진학 포기

교육부는 출석인정 결석 허용일수를 줄이고 학생선수들 대학 입시에 학생부 성적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운동과 공부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는 학생들이 계속 양산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선수들 중 스포츠 스타가 되거나 엘리트 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비율은 극히 적다”면서 “성공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생선수들에게까지 결석을 허용하는 것은 결국 이들의 기본적인 학습권을 침해하게 되는 결과”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국어·영어·수학 같은 지식 외에도 사회적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다양한 학습이 이뤄지는데 수업에 빠지게 되면 이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는 2020년 10월 교육부에 “학생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위한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엄격히 관리하라”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적지 않은 학생선수들이 대회 참여를 위해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한국중고등학교 골프연맹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고교 골프선수 837명 중 31.5%인 264명이 일반 고교가 아닌 방송통신고에 재학 중이다. 한 달에 두 번 주말에만 등교하고 나머지 수업을 인터넷으로 들어도 졸업이 가능해서다. 체육계에서는 결석 허용일수가 지금보다 줄어들면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체육회, 종목별 대안 찾기 고심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종목별로 각각 다른 환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실제 정책 실행 땐 학업과 운동의 병행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 지도자와 선수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결석허용 일수 축소로 인한 학교 현장의 어려움은 파악하고 있다”면서 “종목별로 결석허용 일수를 다르게 적용하는 내용 등을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월 ‘2022 대한민국 체육인 대회’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혁신위는 2019년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 등을 담은 권고안을 발표했었다. 윤 당선인 지지를 선언했던 체육인들 또한 정부가 엘리트 체육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형우 기자
박재홍 기자
2022-03-1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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