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의 30개월… 아직 배고프다

뚝심의 30개월… 아직 배고프다

입력 2010-06-24 00:00
업데이트 2010-06-2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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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감독 자율·화합 강조 ‘외유내강 리더십’ 발휘

대한민국 월드컵축구대표팀이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하면서 허정무(55) 감독의 지도력도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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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오른쪽) 감독과 차두리가 23일 더반의 모저스마비다 스타디움에서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활짝 웃으며 16강 진출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허정무(오른쪽) 감독과 차두리가 23일 더반의 모저스마비다 스타디움에서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활짝 웃으며 16강 진출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한국의 남아공월드컵 16강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두 번째이지만 그때와 달리 장기 합숙훈련 등 전폭적 지지가 없었던 데다 적지에서 일궈낸 것이라 의미가 더 크다. 특히 그가 첫 한국인 사령탑이었다는 점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 그는 국내 감독으로는 사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별명은 고집불통 성격을 잘 말해 주는 ‘진돗개’다. 40대 초반 처음 대표팀 사령탑에 앉았던 1998∼2000년 그는 선수들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지닌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통했다. 2007년 12월 대표팀을 다시 맡았을 때만 해도 그랬다. “일방통행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늘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연륜이 쌓인 듯 상당히 합리적인 지도자로 변신했다.”는 게 축구계 안팎의 중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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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가 23일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중계석에 있는 아버지 차범근 SBS 해설위원을 향해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차두리의 왼쪽 옆구리에 세겨진 문신은 아내 신혜성씨와 딸 아인 양의 생일을 로마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문신을 보고 ‘로봇설 인증샷’이라면서 열띤 반응을 보였다.  더반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차두리가 23일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중계석에 있는 아버지 차범근 SBS 해설위원을 향해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차두리의 왼쪽 옆구리에 세겨진 문신은 아내 신혜성씨와 딸 아인 양의 생일을 로마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문신을 보고 ‘로봇설 인증샷’이라면서 열띤 반응을 보였다.

더반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허 감독은 월드컵 예선을 치르면서 선수들의 자율과 화합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이는 한국의 일곱 차례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보이지 않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구심점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자발적 헌신과 열정을 이끌어 냈다. 최종 엔트리 확정을 앞두고 소수 선수를 탈락시키는 칼자루를 쥐고서도 선수들을 다독이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그나 선수들에게 ‘중대 고비’였지만 심각한 갈등 없이 상황을 넘겨 냈다. “그따위로 해서 태극마크를 달겠느냐.”는 말을 일삼던 권위주의를 버리고 경쟁을 하는 선수들의 어깨를 보듬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선수와 트레이너, 코치, 감독으로서 잇따라 월드컵을 치러 내면서 대표팀의 산과 나무를 모두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결국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발휘하게 했다는 평가다.

사실 한 차례 고비는 있었다. 차두리(프라이부르크)와 오범석(울산)에 대한 ‘편애 논란’이다. 머리를 쥐어뜯듯 지금도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오른쪽 풀백자리. 그는 그리스전에서 활약한 차두리를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는 빼고 대신 오범석을 투입했다. 결과가 나빠지자 “학연, 지연에 얽매인 선발이었다.”고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결과를 놓고 평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 결과는 팀 전체의 문제이지, 한두 선수의 문제는 아니다.”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물론 그의 선택은 실패했다. 하지만 허 감독은 경기 전 둘은 물론 김동진(울산)까지 후보에 올려놓고 다른 코칭 스태프와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댔고, 이렇게 나온 ‘모범 답안’은 오범석이었다. 나이지리전에서도 실패한 김남일 교체 카드를 놓고 그는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를 두텁게 하려 한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진돗개’다운 뚝심과 솔직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술적으로도 허 감독은 견고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펼치는 한국 축구의 ‘색깔’을 정립했다. 그는 바둑 아마 4단의 고수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를 그라운드에서도 신조로 삼는다.”고 밝힌 바 있다. 내 돌을 먼저 살리고 나서 상대의 돌을 잡으러 간다는 뜻으로 수비를 굳건히 하고 기회가 생길 때 한 방의 결정력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의미다. 이는 조별리그 세 차례 경기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났다.

더반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2010-06-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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