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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달린 신부(新婦)에 놀란 신랑(新郞),간첩신고

고추 달린 신부(新婦)에 놀란 신랑(新郞),간첩신고

입력 2013-01-16 00:00
업데이트 2013-01-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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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남자도 아닌 기구한 人生

 홀아비가 술집접대부를 새 아내로 맞았더니 뜻밖에 첫날밤 동침을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는 다음 날밤도 신부와의 실랑이로 밤을 지새웠지만 실패.그러나 무작정 참을 수만은 없는 일, 사흘째 밤에는 힘으로 승복 시키렸더니 애걔걔! 신부에게 고추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신랑(?)의 등에 흥건히 괴었던 땀줄기가 순간 차갑게 식었다. 그는 그길로 일어나 “달렸어…달려!”라는 외마딧소리를 남기로 경찰서로 달려가 신부(?)를 ‘간첩’이라고 신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신부의 기구한 운명을 알고는 “내가 조금만 냉정했더라면…”하고 후회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에 사는 홀아비 李種植씨(34·가명)가 여자도 남자도 아닌 成모양(28)에게 장가들기는 지난 3일의 일.

 지난 1월27일 이 술집에 떠돌아 들어온 成양은 술집 접대부로는 좀 나이가 든 편이지만 서글서글한 얼굴에다 유창한 노래 솜씨로 그래도 인기가 있었다.

 지난 2월 중순 어느날 이 술집의 단골인 李모씨(42)가 몇년 전 상처한 후 홀아비로 살고 있는 친척이 있다면서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중매를 들었다.

 처음에는 “저같은 계집이 무슨…”하고는 펄쩍 뛰었다. ‘혹시 이 손님이 내 정체를 알고 놀리느라고 그러는 게 아닐까’고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 설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중매장이 李씨는 남의 사정에는 아랑곳 없이 끈질기게 덤벼들었다. 상대방도 싫지 않은 눈치고 成양도 맘에 들었다. 시집이 가고 싶은 마음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드디어 지난 3일 李씨의 집으로 옮겨 살림을 차렸다. 엄마없이 홀아비 손에서 자란 11살짜리 딸(국교 4년)과 아들도 첫날부터 “엄마” 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정녕 새 인생의 길이 확트인 것 같았다.

 첫날 밤, 몇년을 어린 자식들 틈에 끼여 낙이라고는 모르고 지내던 李씨에게는 가슴 벅찬 밤이었다.

 밤을 잃었던 세월들을 털어 버리고 첫날 밤의 정을 나누려던 李씨는 신부의 완강한 뿌리침에 ‘술집을 떠돌아 다녔으면서도 그토록 굳게 몸을 지키다니’ 오히려 대견하기만 했다. 

 술집 접대부로 10년,난처한 일 많이 겪고 

 실랑이로 밤을 새운 李씨가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새 아내는 아이들에게 조반을 먹여 학교에 보내고 앞뒤 뜰의 묵은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고 있었다.

 이튿날 밤도 신랑 신부는 실랑이로 밤을 지샜다.

 명색이 부부인데 아무리 이럴 수가 있느냐 싶어 사흘째 밤, 이씨는 힘으로 덤비고 말았다. 그러다가 뜻밖에 고추가 달린 것을 알고 기절할 만큼 놀란 李씨가 간첩이 아닌가 하고 신고했던 것.

 李씨의 신고로 成양은 물론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은 끝에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달렸다고는 하지만 흔적뿐이었다. 유방도 그렇게 탐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남자의 가슴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李씨는 30년 동안이나 이 사실을 감추고 살아온 成양의 기구한 운명을 알게 되자 내가 그만 탄로를내게 하다니하는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평생 직업이라고는 가져본 일 없이 남의 집 결혼식이나 환갑집을 찾아다니며 장구나 치고 노래나 불러주며 언필칭 남자기생이란 소리를 들어오던 李씨 이기에 成양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成양은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어느 외국인과 잘못된 관계를 맺어 태어났다고만 알고 있다.

 남편의 이름조차 모르는 어머니 成모여인(25)은 한을 안고 고향인 경기도 가평에서 아비 없는 아들을 길렀다. 국민학교 들어갈 때 쯤부터 그 아들의 행동은 여자애와 같아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변했다. 차츰 남자애들과는 멀어지고 여자애들과 어울려 놀게 되었다. 모두들 계집애 같다고 놀려댔다.자식이 누구 못지 않게 씩씩하게 자라 주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아들이 미웠다. 18살때 그 아들은 무작정 가출했다. 春川에서 대폿집 심부름 꾼으로 일했다. 술상을 뒷바라지 하면서 색시들이 부르는 노래를 흥얼댄 것이 제법 노래 잘 부르는 놈으로 통하게 됐다. 이때부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것이 달리기는 왜 달렸노 하고 마음 속에서 스스로 푸념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수에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아비 모르고 태어나 어릴적엔 분명 남자  

 그러나 결국 떨어진 곳은 변두리 대폿집. 처음에는 심부름 꾼으로 일했으나 하는 짓이 하도 여자같아 하루는 주인이 장난 삼아 여장을 시켜 술상머리에 앉혔다.

 그랬더니 그 노래 솜씨에 손님들이 반해 으례 다른 여자를 젖혀놓고 찾게 됐다. 인기있는 접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 아닌 여자로서는 접대부 생활이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어디가나 한달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한집에 3일만 있으면 “단골이니 손님 요구대로 고분고분하라” 는 주인의 명령이 떨어진다. 한번 후한 ‘팁’ 을 던져주고 점잖게 물러간 손님이 두번째 올 때는 반드시 몸을 요구하고 주인도 명령했다.

 속이는 것도 한두번이다. “먼저 가 계시면 옷 갈아입고 뒤쫓아가겠다”고 해 놓고는 뺑소니쳤다. 그러면 열이면 아홉이 다음에 다시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마련.

 그렇다고 成양이 한결같이 속일 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러는 남자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 버텨내기도 했지만 완력으로 덤빌 때는 어쩔 수 없이 망신을 당하고 만다. 이럴 때는 눈물로 호소하면 분노했던 남자들도 대개 기구한 운명을 동정, 눈감아 주었다고.

 소문이 날 때는 그날로 그 고장을 떠나야 했다. 그러면서도 보건증은 꼬박 발급 받아 가지고 다녔다고.

 그런 成양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목욕. 양양, 고성 등 시골로 다닐 때는 독탕이 없어 한달에 한번씩 남들이 다 잠자리에 든 밤중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대충 몸을 닦아야 했다.

 成양이 시집가기 전 몸담고 있던 술집 주인은 소박맞고 돌아온 成양이 ‘불쌍해서’ 부엌일을 하도록 해주었으나 그녀도 그도 아닌 成양은 요즘 술만 퍼마신다고.

 <春川=金瑄中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25일호 통권 제 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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