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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 <4> ‘알바’ 천국 스웨덴

[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 <4> ‘알바’ 천국 스웨덴

입력 2014-01-20 00:00
업데이트 2014-01-20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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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회사와 계약땐 일자리 못 찾아줘도 수당 지급

“스웨덴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는 데 적극적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하고 돈을 모아 직접 사는 성취감을 맛보고 자랐습니다.” 지난달 중순 스톡홀름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이바르 에버뮈르(26)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알바의 제왕’으로 불렸다. 그가 광고 프로듀서라는 현재의 직업을 갖기 전까지 거친 시간제 일자리만 해도 10가지가 넘기 때문이다.

“12살때부터 알바했죠”
“12살때부터 알바했죠” 12살 때부터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해 유명 광고 프로듀서가 된 지금도 시간제 일자리를 고집하는 에버뮈르.
에버뮈르가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12살 때였다. 휴대전화를 갖기 위해서였다.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일요판 신문을 팔았다. 50여명의 단골고객이 생겼고 매주 250스웨덴크로나(약 4만 1100원)의 수익을 올렸다. 몇 달이 지나 휴대전화도 갖게 됐다. 에버뮈르는 “스웨덴에서는 10대 초반의 학생들이 일자리를 갖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면서 “돈에 대한 개념을 배우고, 자신이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도 익숙해진다”고 설명했다. 12살 당시의 에버뮈르가 일자리를 갖기 위해 처음 한 일은 신문 지국과 고용계약을 맺는 일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고용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나이가 어리다거나 주관적으로 태도가 나쁘다는 등 불합리한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근로자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서다.

20대 초반까지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지만 에버뮈르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상당수 기업이나 고용주들은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어떤 직업을 갖든 최소한의 생활 수준이 보장되는 사회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원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별도의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워 광고 프로듀서가 된 그는 노르웨이 굴지의 통신사인 텔레노어 기업광고를 찍는 등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쏟아지는 정규직 고용계약을 고사하고 여전히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한다. 원하면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는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는 스톡홀름에만 100여개가 넘는 ‘시간제 인력 파견회사’가 있다. 스웨덴 국내기업은 물론 에데코 등 글로벌 회사들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스웨덴 대사관 허서윤 전문관은 “파견회사들은 각자 강점을 가진 분야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스웨덴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인력을 파견할 수 있다”면서 “호텔, 레스토랑, 의료 서비스의 경우에는 모든 고용의 40% 이상이 이 같은 파견회사를 통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주자, 촬영기사 등은 물론 변호사, 의사, 항공기 파일럿도 파견회사를 통해 시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도 있다. 근로자는 파견회사와 주당 근무시간, 업종, 경력에 대한 급여 수준 등에 대한 계약을 맺고 있는 동안, 실제 파견 여부와 상관없이 파견회사로부터 수당을 지급받는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파견회사가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하는 동안에도 급여의 85%가 지급된다. 대신 당초 자신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파견회사가 소개할 경우 근로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파견회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고객사에서 파견에 대한 인센티브 형태로 수익을 올린다. 에버뮈르 역시 파견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어, 이 같은 혜택을 받는 만큼 굳이 정규직 전일제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민간 중심의 고용시장은 북유럽 최대의 도시 스톡홀름을 다른 서유럽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스톡홀름은 ‘평일 9시에서 오후 6시, 토요일 9시에서 오후 1시, 일요일은 휴무’라는 유럽 상점의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다. 스톡홀름뿐 아니라 중소 규모의 스웨덴 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번화가에는 오후 9~10시는 기본이고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상점이 많고, 동네 슈퍼마켓도 일요일에 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웃 핀란드나 노르웨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스웨덴만의 독특한 문화다. 업무시간은 길지만 스웨덴 정규직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은 39시간으로 평범한 수준이다. 일자리를 수요와 공급으로 놓고 본다면, 스웨덴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일할 사람이 많이 필요한’ 시장인 셈이다.

주스웨덴 대사관 윤헌주 공사는 “한국에서는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해 근로자의 입장에서만 살피는 경향이 있는데, 스웨덴은 근로자와 기업이 원활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서로 양보해 현재의 시스템을 구축했다”면서 “늦게까지 상점을 열어도 일할 수 있는 시간제 근로자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평일에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대신 남들이 쉬는 주말에 일하면서 임금을 받는 구조 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고용시장의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스톡홀름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2014-01-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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