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은행대출금 줄고 중소기업은 늘어…중기 자금사정 지수 악화중소기업 제2금융권 대출 급증…“담보·매출 위주 대출 심사관행 벗어나야”
기업 부문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대기업은 자금 사정이 좋은 편이다. 영업 실적이 좋은데 설비 투자 등은 줄이면서 남는 돈으로 빚을 갚고 있다.
중소기업은 더 많은 돈을 빌리고 있지만, 여전히 자금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작년 말 기준 은행의 기업 대출 중 대기업이 빌린 돈은 164조5천555억원으로 2015년 말보다 9조9천315억원 감소했다.
반면 중소기업이 빌린 돈은 작년 말 609조4천49억원으로 1년 전보다 33조7천880억원 늘었다.
대기업은 내부 유보금이 증가하고 투자자금 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빌린 돈을 갚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좋지 않아 더 많이 빌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기업 경기실사지수 중 자금 사정 항목을 보면 중소기업은 돈을 빌리고 대기업은 돈을 갚는 속사정을 엿볼 수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간 자금사정 지수의 월평균이 약 74.4로 2011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앞선 5년간의 월평균 약 79.5보다 악화했다.
반면 대기업은 최근 1년간 지수 월평균이 92.5로 그보다 앞선 5년간 지수 월평균 91.5보다 높아졌다.
자금 사정은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나쁘고 100보다 높으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년과 그보다 앞선 5년을 비교하면 대기업은 자금 사정이 개선됐지만 중소기업은 악화한 것이다.
제2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 현황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서 중소기업이 빌린 돈은 2013년 기준 45조9천524억이었는데 올해 7월 기준 99조5천972억원으로 116.7% 급증했다.
반면 대기업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서 빌린 자금은 같은 기간 13조4천893억원에서 17조1천150억원으로 26.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이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에서 훨씬 많은 돈을 빌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중 자금은 이른바 ‘비생산적’ 분야로 꼽히는 부동산 투기 시장에 다수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은행의 전체 대출금 가운데 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에는 72.3%였는데 작년에는 56.6%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비율은 27.7%에서 43.4%로 상승했다.
산업대출에서 부동산 및 임대업에 투입된 자금의 비율은 1998년 1.0%에 그쳤는데 2016년에는 18.5%를 기록하며 관련 통계 작성 후 최고치가 됐다.
중소기업이 자금난을 겪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었고 일반인들도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비생산의 악순환이 반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추석자금 수요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46%가 자금 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고 원활하다는 반응은 9.5%에 그쳤다.
2015년과 2016년 추석을 앞두고 실시한 비슷한 조사에서 자금 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한 기업의 비율은 각각 44.5%, 45.5%였다.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반응이 늘어난 것이다.
중소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금융기관이 매출액 등 실적 위주로 대출 심사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복수 응답)에서 금융기관이 매출액 등 재무제표 위주로 심사해서 애로를 느낀다는 응답은 37.5%로 작년보다 4.3%포인트(p) 늘었고, 신규 대출 기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답변은 28.6%로 4.8%포인트 증가했다.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정부의 예금자 보호 등으로 은행이 정책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만큼 산업 자금을 조달하는 공적 역할을 더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진균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은행이 10∼20년 거래한 기업에도 담보·보증을 가져오라고 한다”며 “20년 정도 거래했다면 전당포식으로 담보만 받고 거래할 것이 아니라 사업성을 평가해서 대출해야 하는데 그런 기능이 잘 안 되니 금융산업이 낙후됐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증이나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의 사업성 등 재무제표로는 파악되지 않는 요소를 평가하도록 시스템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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