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수험생 퀵 서비스/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수험생 퀵 서비스/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0-10-05 00:00
업데이트 201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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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징크스였던가. 입학시험이 치러지는 날은 언제나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입시생을 둔 어머니들이 자식의 합격을 치성 드리느라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은 극히 한국적 진풍경이었다. 합격을 기원하는 엿가락이나 찰떡이 나붙은 대학의 담벼락 옆에서 말이다.

올들어 새로운 입시 풍속도가 등장했다. 대학 수시모집 논술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을 ‘운송’하는 ‘퀵 서비스’가 그것이다. 서울 광진구 K대에서 오전에 논술시험을 끝낸 입시생을 오후 동대문구 O대 시험장까지 오토바이로 실어나르는 식이다. 지난 주말 신촌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시험장 입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목숨 건 곡예 질주가 이어졌단다. 한국교육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단면도일 게다.

택시비의 6∼7배를 받는 택배업체로선 수지맞는 틈새시장을 찾아낸 합리적 선택을 한 셈이다. 개별 수험생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입 제도가 좀 복잡한가. 수시 1·2차와 정시 모집, 그리고 논술만 보는 수시와 수능성적과 연계한 수시에다 입학사정관제에 이르기까지. 이런 판국에 다소의 위험을 감수해 시험을 한 군데라도 더 보겠다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안간힘일 뿐이라는 차원에서다.

물론 우리의 교육열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산업화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음은 사실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틈만 나면 한국의 교육열과 경쟁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았는가. 중간선거를 앞둔 유세현장인 지난달 말 위스콘신대. 오바마는 공화당의 교육예산 삭감을 비판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청중들에게 “한국이 대학교육의 혜택을 받는 것을 어렵게 하느냐?”고 물어 “아니요.”라는 호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육은 오바마의 찬사를 받아들이기가 여간 낯뜨겁지 않다. 뜨거운 교육열도 더는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하지 못하고 한낱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웃 일본과 중국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했건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교육당국의 무능, 학부모들의 이기심, 전교조·일반 교사 할 것 없이 사교육에 비해서 떨어지는 일선 교사들의 경쟁력 등 총체적 으로 한국교육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기우일까. 오토바이 뒤에 수험생들이 아찔하게 매달려 가는 풍속도야말로 공교육 붕괴와 천문학적 사교육비로 허덕이는 한국교육의 환골탈태를 촉구하는 무언의 메시지일 듯싶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0-10-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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