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하라/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하라/주원규 소설가

입력 2011-08-18 00:00
업데이트 2011-08-18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서울 용산 남일당에 이어 홍익대 두리반, 그리고 이번엔 명동이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의 피맺힌 외침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들의 시선엔 서늘함을 넘어선 차가움이 있었다. 그들이 그 차가움을 당연한 논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건 법이라는 이름이었다.

이미지 확대
주원규 소설가
주원규 소설가
정당한 법 집행. 이 한 마디 앞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한 장의 서류 앞에 쓰인 내용도, 의미도 모호한 판결문을 절대의 낙인처럼 들이밀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법대로 할 뿐이다.’

부러 편가르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 누군가들이 말하는 법의 부당한 적용에 대해 추궁할 여력은 필자에게 주어진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가지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 오늘도, 내일도 법의 서슬 아래 삶의 모든 것을 강탈당해도 여전히 앵무새처럼 ‘법대로’만을 외치는 이들의 논리에 어느 순간 우리들 모두가 세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법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그리고 그 누군가들은 누구인가.

첫 번째 질문. 법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이 질문의 답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필자의 네 살배기 조카도 알고 있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지만 이 당연한 답에 대한 진정성 있는 실천은 요원해져 버린 지 오래다.

사람이 먼저라는 취지의 악용으로 인해 수많은 특별법들이 배설되었고, 찬란하고 난해한 법조문은 경쟁과 착취의 논리에서 승리하고자 발버둥치는 천민자본주의 신봉자들의 들러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식으로 자신들의 편에서만 툭하면 법 운운하는 작태를 민주주의의 미덕인 것처럼 남발해 온 것이다.

이 경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선명해진다. 그 누군가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송두리째 도려내고도 법의 이름으로 태연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자들, 사람이 법보다 먼저라는 진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오직 승리한 자신들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 그 승리의 푯대를 향해 탈선한 폭주기관차가 되어 달리는 사람들, 승리의 의미를 ‘너’를 짓밟고 일어서는 밥그릇 빼앗기라는 프레임에만 가둬놓는 이들, 그 누군가들은 바로 이런 이들이 아닐까.

그 누군가들의 눈에 보인 가난과 무식함은 삶의 전부를 건 척결의 대상이다. 법은 결코 패자들의 비루한 가치에 손을 들어주는 보루가 될 수 없는 고결한 가치라고 입을 모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 누군가들이 지향하는 승리의 궁극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공멸의 패악질만 반복, 재생산될 뿐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세상에서 그 누군가들은 사람이 아니다. ‘너’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심장이 뚫려 버린 괴물이다. 이 괴물들이 법보다 먼저인 세상을 원하는가. 과연 이것이 우리들 세상의 오늘과 내일이 되어야 하는가.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해야 한다. 이때의 번창은 우리들 세상의 공생이다. ‘오직 나만 가난과 무식에서 벗어나면 그만이다.’라는 경쟁논리의 노예가 된 사람이야말로 약육강식의 괴물을 동경하는 참가난과 무식함의 노예임을 영혼의 뼛속까지 자각할 때, 그때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의 번창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세상은 그 가난과 무식함으로 인해 번창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괴물들이 추종하는 법의 논리로 사로잡은, 착취와 경쟁의 결과로 얻어낸 가난과 무식의 한계를 벗어난 가난 아닌 가난, ‘해방된 가난’을 맛볼 것이기 때문이다.

※ 칼럼 제목은 김원이 쓴 ‘박정희시대의 유령들’ 발문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2011-08-18 30면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