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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인사청문회와 매뉴얼/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인사청문회와 매뉴얼/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3-01-24 00:00
업데이트 2013-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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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1988년 여소야대 시절에 ‘5공 청문회’라는 것을 TV로 처음 보면서 느꼈던 감흥이 벌써 4반세기다. 요즘엔 한국을 청문회공화국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전체 국민을 청중으로 삼아 빈번하게 열린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에는 청문회의 목적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인사청문회는 공직에 임명될 사람이 그 공직에 적합한지 여부를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제도이다.

혹시라도 하자가 있다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사회의 기강도 유지하고 보다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취지이다.

그런데 하자의 기준과 그 기준에 따른 처결 방향을 명시한 법적 매뉴얼이 없다 보니, 온 나라에 흙탕물은 흙탕물대로 일으켜 놓고도 정작 결론은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꼼짝 못할 증거가 나타나면 당사자는 그저 죄송하다면서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는 식으로 꼬리를 내리거나,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관례’였다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관례도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다는 기본 상식조차도 모르는 답답한 수준을 온 국민 앞에 드러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을 경우에는 되레 자기는 한 점 부끄럼도 없다면서 오리발을 내밀거나, 아예 관련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며 끝까지 버틴다. TV를 통해 국민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은 잠시요, 그 후에 차지할 관직은 사후에도 족보에 남아 영원하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자기를 임명한 주군께서 사퇴하라는 언질을 주지 않는 한 온갖 구정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끝까지 버틴다. 어떤 비리와 불법행위가 드러나도, 그것 때문에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을 일은 없기에 밑질 게 없다. 그러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무조건 버티고 본다.

이런 식의 청문회는 국가 예산의 낭비요, 시간의 낭비요, 인력의 낭비일 뿐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이롭지 않다. 청문회에서 통과될 수 없는 경우를 법으로 정해 놓은 바가 없기에, 당사자는 엉덩이 무거운 걸 자랑으로 여기고, 청문회는 종종 정쟁의 격전장으로 전락한다. 이는 아주 낭비적인 시스템이다.

위장전입, 탈세, 불법투기, 뇌물수수, 횡령, 배임 등과 같은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항목별로 계량화해서 몇 점이 넘을 경우 자동으로 비준이 부결되는 법적 장치가 있다면, 낭비를 상당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법부 관련 공직은 1점이라도 불법 전력이 있으면 자동 부결되도록 해야 한다. 어물전 고양이 노릇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자에게 사법부의 고위직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료 제출 요구 불응에 대한 처벌 조항도 필요하다. 위증을 한 경우에는 법정 위증죄보다 더 강하게 처벌하는 조항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청문회 위증은 전 국민을 농락한 거짓 증언으로, 일반 위증보다 죄질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이런 청문회를 통과한 공직자라야 권위가 절로 서고, 사회 기강을 세울 수 있다. 일반 국민도 설사 자기는 장삼이사로서 남들 몰래 조그만 비리를 저지를지라도 고위 공직자들을 내심으로나마 존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매뉴얼을 만들지 않고 설전만 벌일까? 매뉴얼이 부실한 문화, 있는 매뉴얼조차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는 이상한 문화를 이제는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2013-01-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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